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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쓰기
한시 쓰기 · 작법

한시 작법 안내

이 안내는 한시 공부 → 한시 작법으로 옮겨 가는 중이다.

눈앞의 경물(景)에서 일어난 감흥을 스물여덟 자의 질서 속에 응축한다.
시상의 갈무리부터 평수운 압운과 평측·점대의 조율까지, 근체시 한 수를 짓는 원리를 살핀다.

1. 한시와 근체시 — 정형의 질서로 빚는 정경의 울림

동아시아 시학에서는 시의 본령을 『시경(詩經)』 이래 ‘음영정성(吟詠情性)’, 곧 사람의 본성과 정감을 진솔하게 읊는 일이라 정의해 왔다. 그러나 한시(漢詩)가 마음을 드러내는 방식은 산문처럼 감정을 길게 서술하는 데 있지 않다. 시인은 먼저 계절의 빛깔이나 바람 소리, 나뭇가지에 남은 열매 같은 구체적인 경물(景)을 포착하고, 그 장면의 대조와 배치 속에 내면의 정감(情)을 스미게 한다. 이처럼 경물과 정감이 하나로 녹아들어 말 너머에 여운을 남기는 미학을 ‘정경교융(情景交融)’이라 부른다.

한시의 시체(詩體)는 역사적으로 크게 고체시(古體詩, 고시)와 근체시(近體詩, 금체시)의 두 갈래로 나뉜다. 한위육조(漢魏六朝) 이래의 고체시가 구수(句數)나 평측에 비교적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양식이라면, 근체시는 남조 제(齊)나라 영명(永明, 483~493) 연간 주옹(周顒)·심약(沈約) 등이 한자의 사성(四聲)과 팔병(八病)을 탐구한 영명체(永明體)에서 싹터, 당대(唐代) 초당의 심전기(沈佺期)·송지문(宋之問)을 거치며 엄격한 정형으로 확립된 양식이다. 성기옥이 『한시의 맛』에서 설명하듯, 설령 한 줄이 다섯 자이고 전체가 여덟 줄인 작품이라 하더라도 당나라 이전의 시이거나 근체의 성률 법칙을 따르지 않으면 고체시로 분류한다.

성당(盛唐)의 왕유·이백·두보에 이르러 완숙의 경지에 오른 근체시는 동아시아 지식인의 보편적인 문학 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도 신라 최치원(崔致遠)의 〈추야우중(秋夜雨中)〉과 고려 정지상(鄭知常)의 〈송인(送人)〉을 비롯해 조선 시대의 수많은 문인들이 바로 이 근체시의 격률 위에서 당대의 풍경과 고독, 사유를 남겼다. 오늘날 한시를 직접 지어 보는 일은 옛 시인들이 스무 자 혹은 스물여덟 자의 엄정한 제약 속에서 왜 그 글자를 골라야 했는지를 몸소 체험하고, 고전 한시를 읽는 눈을 한층 깊게 여는 가장 확실한 통로가 된다.

왕지환(王之渙) · 〈등관작루(登鸛雀樓)〉 제1·2구 (오언절구)

白日依山盡
黃河入海流

백일의산진 / 황하입해류

서산에 기대어 저물어 가는 밝은 해와 바다로 흘러드는 황하의 거대한 물줄기를 다섯 글자씩 두 줄(구)의 대장(對仗)으로 압축했다. 이어지는 3·4구에서는 천 리 밖을 더 내다보기 위해 누각을 한 층 더 오른다는 사유의 도약으로 시를 맺는다.

〈등관작루〉 전체 읽기 →

2. 형식과 호흡 — 절구·율시와 오언·칠언의 리듬

근체시는 한 구(句)의 글자 수에 따라 다섯 자인 오언(五言)과 일곱 자인 칠언(七言)으로 갈리고, 전체 줄 수에 따라 네 구로 완결되는 절구(絶句), 여덟 구 네 연(聯)으로 짜이는 율시(律詩), 그리고 열 구 이상 대구를 길게 이어 가는 배율(排律)로 구분된다. 한시나루 쓰기 작업실은 근체시의 기본이 되는 네 가지 정형(오언절구·칠언절구·오언율시·칠언율시)을 다룬다.

근체시의 네 가지 기본 시체 · 제목과 문장부호는 본문 글자 수에서 제외한다
시체(詩體)한 구 글자 수전체 구수총 글자 수기본 낭송 마디
오언절구(五言絶句)5자4구20자2 + 3 (또는 2 + 1 + 2)
칠언절구(七言絶句)7자4구28자2 + 2 + 3 (또는 2 + 2 + 1 + 2)
오언율시(五言律詩)5자8구(4련)40자2 + 3 · 함련·경련 대장 필수
칠언율시(七言律詩)7자8구(4련)56자2 + 2 + 3 · 함련·경련 대장 필수

오언과 칠언의 차이는 단순한 두 글자의 증감에 그치지 않는다. 오언은 한 구가 ‘두 자 + 세 자(2+3)’로 끊어져 호흡이 간결하고 응축미가 강한 반면, 칠언은 앞의 네 글자가 두 자씩 묶이고 뒤의 세 글자가 이어지는 ‘두 자 + 두 자 + 세 자(2+2+3)’의 마디를 이루어 가락이 유려하고 정경을 묘사할 여유가 넉넉하다. 따라서 한시를 처음 지을 때는 대장(對仗)의 의무가 없으면서도 일곱 자의 호흡 안에 시상을 자연스럽게 펼칠 수 있는 칠언절구에서 출발하는 편이 좋다.

여덟 구로 이루어진 율시는 두 구씩 묶어 수련(首聯, 1·2구) · 함련(頷聯, 3·4구) · 경련(頸聯, 5·6구) · 미련(尾聯, 7·8구)이라 부른다. 수련에서 시의 배경을 열고, 함련과 경련에서는 출구(홀수 구)와 대구(짝수 구)의 품사와 문법 구조를 좌우 대칭으로 맞추는 대장을 정밀하게 구사한 뒤, 미련에서 시인의 감회를 수렴한다. 두보(杜甫)의 오언율시 〈춘망(春望)〉과 칠언율시 〈등고(登高)〉가 율시 건축미의 정점이다.

3. 운과 평측 — 소리의 교차와 대비가 만드는 음악성

근체시가 음악적 긴장과 통일을 얻는 두 기둥은 구절 끝의 소리를 맞추는 압운(押韻)과 구절 안팎의 높낮이를 교차시키는 평측(平仄)이다. 이 규칙들은 시인을 속박하기 위해 임의로 만든 규제가 아니라, 단조로운 반복을 피하고 소리의 대비를 극대화하기 위해 다듬어진 음성학적 원리이다(『한시의 맛』, 10~26쪽).

평수운(平水韻) 106운과 평성 30운, 그리고 일운도저

압운할 글자(운자·韻字)를 고를 때는 현대 한국어 발음이 아니라 금나라 때 정립되어 한시 작법의 표준이 된 운서 『평수운(平水韻)』의 106운 체계를 따른다. 106운은 사성에 따라 상평성 15운, 하평성 15운, 상성 29운, 거성 30운, 입성 17운으로 나뉘는데, 근체시는 평성으로 압운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상평 15운과 하평 15운을 합친 ‘평성 30운’ 가운데 하나의 운목을 골라 짝수 구(절구의 2·4구, 율시의 2·4·6·8구) 끝에 일관되게 쓴다(상평과 하평은 성조 높낮이의 차이가 아니라 글자 수가 많아 운서의 권을 상·하로 나눈 것이다). 시의 첫 구 끝에도 같은 운목의 평성 글자를 놓는 방식을 첫 구 압운(首句押韻, 수구압운)이라 하며 칠언시에서 기본으로 쓰인다. 반면 압운하지 않는 홀수 구(제3구 등)의 끝은 반드시 측성 글자로 닫아 소리의 굴곡을 만든다. 한 시 안에서 다른 운목이 섞이는 낙운(落韻), 같은 글자를 중복 압운하는 중운(重韻), 뜻과 무관하게 소리만 맞춘 주운(湊韻)은 피해야 한다.

사성(四聲)과 평측, 그리고 입성(ㄱ·ㄹ·ㅂ 받침) 판별법

전통 한자음의 사성 가운데 낮고 평탄하게 이어지는 평성(平聲)이 ‘평(平)’이 되고, 위로 올라가는 상성(上聲)·위에서 떨어지는 거성(去聲)·짧고 촉급하게 닫히는 입성(入聲)의 세 소리가 합쳐져 ‘측(仄)’이 된다. 현대 한국어에서는 성조의 높낮이가 사라져 평성·상성·거성은 운서나 사전으로 확인해야 하지만, 우리 한자음에서 받침이 ‘ㄱ·ㄹ·ㅂ’으로 끝나는 글자(國·白·獨·葉·月·別·法·合 등)는 고대 입성자이므로 사전 없이도 모두 측성(仄聲)으로 판별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한시의 맛』, 27쪽).

평기·측기와 2·4·6 부동, 점대(粘對)의 원리

근체시의 평측 배열은 다음 네 가지 원리가 맞물려 돌아간다.

  1. 제1구 둘째 글자로 정하는 평기(平起)와 측기(仄起)

    첫째 글자는 비교적 자유로운 자리이므로 기준이 되지 않으며, 리듬의 첫 기둥인 제1구 둘째 글자(제2자)가 평성이면 평기식(平起式), 측성이면 측기식(仄起式)이라 부른다.

  2. 한 구 안의 교차 — 2·4·6 평측 부동(不同)

    구절 안에서 짝수 자리인 2·4번째(칠언은 2·4·6번째) 글자는 리듬의 중심축이므로 반드시 ‘평·측·평’ 또는 ‘측·평·측’으로 번갈아 놓여야 한다(이사육분명·二四六分明).

  3. 구와 구의 맞물림 — 점대(粘對)

    같은 연(聯) 안의 홀수 구(출구)와 짝수 구(대구)는 2·4·6번째 평측을 서로 정반대로 맞세우고(對), 연이 바뀔 때 앞 연의 짝수 구(2·4·6구)와 뒤 연의 홀수 구(3·5·7구)는 2·4번째 평측 흐름을 같게 이어 붙인다(粘). 이 점대 덕분에 홀수 구끼리나 짝수 구끼리 성조가 똑같아지는 단조로움을 피하고 시 전체에 입체적인 파동이 생겨난다.

  4. 일삼오불론(一三五不論)과 고평·하삼평 금지, 그리고 요체(拗體)

    홀수 자리인 1·3·5번째 글자는 시어를 살리기 위해 평측을 유연하게 바꿀 수 있으나(일삼오불론), 그 결과 압운 구절에서 끝 글자를 빼고 평성이 하나만 남는 고평(孤平)이나 구절 끝 세 글자가 같은 성조로 몰리는 하삼평(下三平)·하삼측(下三仄)이 되는 것은 엄격히 금한다. 부득이 시어의 자연스러운 표현을 위해 정격 평측을 꺾은 구절(요구·拗句)을 쓸 때는 인접한 글자나 대구의 평측을 맞바꾸어 음악적 균형을 되살리는 구요(救拗)를 함께 구사한다(요체, 예: 이백 〈송우인(送友人)〉 제7·8구).

4. 짜임과 쓰는 순서 — 시상에서 완작에 이르는 다섯 걸음

한시 한 수를 지을 때 제1구 첫 글자부터 순서대로 한자를 메워 나가면, 마지막 구절에 이르러 하고 싶은 말과 운자가 어긋나는 주운(湊韻)이나 위제(違題)에 빠지기 쉽다. 성기옥의 『한시의 맛』(28~30쪽)에서 강조하듯, 반드시 표현하려는 시상이 우선이며, 주제가 응결되는 마지막 결구(율시에서는 경련·미련)의 핵심 의미와 압운자를 먼저 확정한 뒤 앞선 구절들의 운자와 평측을 역산하여 짓는 것이 정법이다. 한시나루 쓰기 화면의 ‘처음이에요’ 단계형 흐름(/write/?mode=beginner)은 이 전통 작법의 순서를 다섯 단계로 구현하고 있다.

  1. 눈앞의 경물과 감흥을 우리말 산문으로 적는다 (시상 갈무리)

    처음부터 한자나 글자 수를 의식하지 말고, 무엇을 보았고 어떤 감흥이 일었는지 우리말로 자유롭게 적는다. 이것이 작품의 원재료인 시상(詩想)이다.

  2. 기승전결(起承轉結) 네 장면으로 나누고 직접적인 감정 설명을 덜어낸다

    장면 열기(起) → 이어 보태기(承) → 시선·시간 돌리기(轉) → 여운으로 맺기(結)의 기승전결 구조에 맞춰 네 줄에 담을 핵심 장면만 추린다. 이때 ‘그립다’, ‘외롭다’ 같은 직접적인 감정 설명은 본문에서 덜어내고 경물의 대비 속에 스미게 한다.

  3. 마지막 결구에 남길 뜻으로 중심 운자(韻字)와 평수운 운목을 고른다

    제4구(결구) 끝에 놓일 핵심 글자를 먼저 정하고, 그 글자가 속한 『평수운』 평성 운목 안에서 제1구와 제2구 끝에 놓을 운자를 함께 고른다. 끝 글자의 기둥이 서면 각 구가 나아갈 방향이 또렷해진다.

  4. 산문 어구를 2 + 2 + 3 호흡의 한자 시어(詩語)로 압축하여 줄을 채운다

    각 장면의 뜻을 두 글자·세 글자 단위의 고전 시어로 옮겨 칠언의 ‘2 + 2 + 3’(오언은 ‘2 + 3’) 마디에 맞춰 배치한다. 평측에 꿰맞추려고 한문 문법의 자연스러운 어순(자의의 순서)을 거꾸로 뒤집는 도운(倒韻)을 범하지 않도록 유의한다.

  5. 격률 검사기로 평측·점대·다음자(多音字)를 점검하며 퇴고한다

    원고지를 채운 뒤 소리 내어 읽으며 2·4·6 평측 부동과 점대, 고평·하삼평 유무를 살핀다. 뜻에 따라 성조가 갈리는 다음자(노란 표시)는 문맥 속의 의미에 맞는 성조인지 확인하여 최종 확정한다.

5. 칠언절구 작례 — 감나무 시 〈庭柿有懷〉의 구상과 완성

가을 아침 마당의 감나무를 바라보며 얻은 한 조각의 감흥이 어떻게 스물여덟 자의 칠언절구로 정련되는지, 작법의 착안과 작자의 판단 과정을 단계별로 따라가 본다.

가을 뜰의 감나무를 보고 지은 칠언절구 작례

첫째 단계 · 시상(詩想)의 포착 — 우리말 산문으로 감흥을 기록한다

작법의 착안눈앞의 풍경과 그로부터 일어난 내면의 감흥을 처음부터 한자로 옮기려 애쓰면 시상이 굳어지기 쉽다. 글자 수나 평측에 구애받지 말고, 무엇을 보았고 어떤 마음이 일었는지를 먼저 우리말 산문으로 충실히 적어 시의 원재료를 마련한다.

아침에 일어나 집 앞 감나무를 보니, 지난밤 바람과 가을비에 잎이 모두 지고 붉은 감이 모습을 드러냈다. 까마귀 두 마리가 감을 쪼아 먹으러 와서 앙상한 가지 위에 앉는다. 무성했던 여름 잎이 가리고 있던 붉디붉은 열매는 마치 님 향한 그리움 같아, 만물이 시들어 가는 가을에야 더욱 붉은 빛을 드러낸다.

작자의 판단비바람에 잎이 다 떨어진 마당의 감나무와 앙상한 가지에 앉아 홍시를 쪼는 까마귀 두 마리를 먼저 기록했다. 이어 한여름 무성한 잎에 가려 보이지 않던 열매가 만물이 시드는 가을에야 붉게 드러나는 모습을,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또렷해지는 그리움과 겹쳐 놓았다.

젊은 날(여름)의 무성한 일상 속에서는 푸른 잎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그리움이, 만물이 조락하는 인생의 황혼(가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더욱 선명하고 붉게 드러난다는 시상을 담았다.

둘째 단계 · 기승전결(起承轉結)의 배치와 절제 — 네 장면을 추리고 설명을 덜어낸다

작법의 착안스물여덟 자의 칠언절구 안에 산문의 모든 설명을 우겨넣을 수는 없다. 기(배경 제시) → 승(정경의 구체화) → 전(시간이나 시선의 전환) → 결(주제의 응결)에 맞추어 네 장면만 남기고, 감정을 직접 설명하는 말은 덜어내어 경물(景) 스스로 정감(情)을 말하게 한다.

작자의 판단네 구의 장면을 ‘빈 감나무 가지(起) → 감을 쪼는 까마귀 한 쌍(承) → 지난여름 짙은 녹음의 회상(轉) → 만물이 시들 때 유달리 붉은 감(結)’의 순서로 배치했다. ‘아침에 일어나’ 같은 부수적 설명과 ‘님 향한 그리움’이라는 직접적 진술은 본문에서 모두 덜어내고, 제목과 마지막 구절의 여운에 맡기기로 판단했다.

  1. 기(起) · 장면 열기밤비와 가을 서풍에 감나무 잎이 남김없이 져 비어 버린 가지
  2. 승(承) · 이어 보태기까마귀 한 쌍이 앙상한 감나무 가지 한가운데로 날아와 감을 쪼는 모습
  3. 전(轉) · 시선 돌리기긴 여름날 짙은 녹음이 겹겹이 가려 감추어 두었던 자리
  4. 결(結) · 여운으로 맺기온 나무가 시들어 갈 때에야 유달리 붉게 빛나는 감과 그리움

본문에서 덜어낸 표현: 「아침에 일어나」 · 「집 앞」 · 「님 향한 그리움」.

스물여덟 자의 칠언절구 안에 ‘아침에 일어나’나 ‘집 앞’ 같은 일상적 경위까지 모두 적으면 정경의 밀도가 흩어진다. 무엇보다 ‘님 향한 그리움’이라는 속마음을 본문에서 직접 말해 버리면 눈앞의 붉은 감은 감정을 설명하는 도구에 그치게 된다. 설명적인 시간·장소와 직접적인 감정어를 본문에서 과감히 덜어내고, 그리움이라는 정서(情)는 제목의 ‘유회(有懷, 회포를 품다)’와 마지막 구절의 ‘분외홍(分外紅, 유달리 붉다)’이 맞물리는 경물(景)의 여운 속에 맡겼다.

셋째 단계 · 중심 운자 확정과 평수운 선택 — 결구의 핵심 뜻에서 운목을 역산한다

작법의 착안근체시를 지을 때 제1구부터 순서대로 운자를 고르면 결구에 이르러 주제를 뒷받침할 글자가 마땅치 않은 주운(湊韻)에 빠지기 쉽다. 시 전체가 도달할 제4구 결구의 끝 글자를 먼저 정한 뒤, 그 글자가 속한 『평수운(平水韻)』의 평성 운목 안에서 제1구와 제2구의 운자를 역산하여 고른다.

작자의 판단결구 끝에 남길 핵심 인상이 ‘유달리 붉다’이므로 ‘붉을 홍(紅)’을 중심 운자로 먼저 확정했다. ‘홍(紅)’이 속한 ‘상평 일동(上平 一東)’ 운목에서 처음에는 ‘풍(風)·공(空)·홍(紅)’을 후보로 삼았으나, 시구를 다듬으며 ‘풍(風)’은 제1구 안쪽(‘서풍·西風’)으로 옮기고 1·2·4구의 압운자를 ‘공(空, 비다) · 중(中, 가운데) · 홍(홍, 붉다)’으로 확정했다.

채택한 시체는 칠언절구 · 측기수구압운(仄起首句押韻)이며, 운목은 上平 一東(상평 일동)이다.

검토한 끝 글자 후보: 風(풍, 바람) · 空(공, 비다) · 中(중, 가운데) · 紅(홍, 붉다)

성기옥의 『한시의 맛』에서 강조하듯, 압운은 첫 구부터 기계적으로 메우는 것이 아니라 시의 주제가 응결되는 마지막 결구의 핵심 글자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 시가 남기고자 하는 최종 인상은 만물이 시든 뒤에도 ‘유달리 붉다(分外紅)’는 데 있으므로, 결구(제4구)의 운자로 ‘붉을 홍(紅)’을 먼저 확정한다. 이어 ‘홍(紅)’이 속한 평수운 ‘상평 일동(上平 一東)’ 운목 안에서 앞선 구절들의 운자를 역산한다. 애초 끝 글자 후보로 함께 떠올린 ‘바람 풍(風)’은 제1구 안쪽(‘서풍·西風’)으로 자리를 옮기고, 제1구 끝에는 잎이 다 떨어져 비어 버린 가지를 나타내는 ‘빌 공(空)’을, 제2구 끝에는 까마귀가 날아와 앉은 가지 한가운데를 가리키는 ‘가운데 중(中)’을 배치하여 ‘공(空) → 중(中) → 홍(紅)’의 일운도저(一韻到底) 구도를 완성했다.

넷째 단계 · 시어(詩語)의 압축 — 산문 구절을 두 자·세 자의 한시 어휘로 정련한다

작법의 착안각 장면의 우리말 어구를 칠언절구의 ‘2 + 2 + 3’ 호흡에 어울리는 두 글자·세 글자 단위의 한자 시어로 바꾼다. 이때 한문 문법의 자연스러운 어순(자의의 순서)을 지키고, 한 글자씩 흩어지지 않도록 밀도 있는 고전 시어를 가려 쓴다.

작자의 판단까마귀 두 마리는 ‘쌍아(雙鴉)’로, 새가 날아와 앉은 감나무 가지는 ‘시지(柿枝)’로 압축했다. 무성했던 여름날의 기억은 ‘번음(繁陰, 짙은 그늘)’과 ‘장하(長夏, 긴 여름)’로 짝지우고, 결구의 마지막 세 글자는 ‘분외홍(分外紅, 유달리 붉다)’으로 맺어 시각적 초점을 모았다.

한시의 시어(詩語)는 산문 어구를 일대일로 직역한 말이 아니라, 한문 고유의 어순(자의의 순서)과 평측의 교차를 지키면서 시각적 형상을 두 글자·세 글자 마디로 응축한 어휘이다. 아래는 각 구의 핵심 장면을 이루기 위해 선택한 시어와 성률적 근거이다.

까마귀 두 마리
雙鴉(쌍아)

산문의 ‘까마귀 두 마리’를 두 글자 평성 시어(平平)로 압축하여 제2구 첫머리의 리듬 기둥을 세운다.

감 → 감나무 가지 한가운데
柿 → 柿枝中(시 → 시지중)

까마귀가 날아와 쪼는 자리를 ‘감나무 가지 사이(柿枝中, 仄平平)’ 세 글자 마디로 구체화하면서 제2구 끝을 상평 일동 운자인 ‘중(中)’으로 맺는다.

짙은 그늘 · 긴 여름
繁陰 · 長夏(번음 · 장하)

한여름의 무성했던 녹음을 ‘번음(繁陰, 平平)’과 ‘장하(長夏, 平仄)’ 두 쌍의 시어로 응축하여 전구(제3구)의 시간 전환을 이끈다.

붉다 → 유달리 붉다
紅 → 分外紅(홍 → 분외홍)

온 나무가 시들어 가는 가을(萬木凋時)과 대조되도록 ‘분외홍(分外紅, 仄仄平, 유달리 붉다)’으로 결구를 맺어 말하지 않은 그리움의 농도를 극대화한다.

다섯째 단계 · 구절의 조립과 호흡 확인 — 2 + 2 + 3의 마디로 스물여덟 자를 잇는다

작법의 착안고른 시어들을 일곱 자씩 네 줄의 원고지에 배열하고, 각 구가 ‘두 자 / 두 자 / 세 자(2+2+3)’의 의미 마디로 자연스럽게 끊어 읽히는지 소리 내어 점검한다. 제3구(전구)의 끝 글자는 압운하지 않고 측성 글자로 눌러 주어야 제4구(결구)의 압운이 힘 있게 살아난다.

작자의 판단제3구 끝을 측성인 ‘곳 처(處)’로 잡아 ‘번음장하차장처(繁陰長夏遮藏處)’로 전환의 호흡을 세우고, 제4구를 ‘만목조시분외홍(萬木凋時分外紅)’으로 받아 시를 완결했다. 본문에서 덜어낸 그리움의 정서는 제목 ‘정시유회(庭柿有懷)’가 시 전체의 배경음처럼 감싸도록 했다.

庭柿有懷정시유회 · 뜰의 감나무를 보고 그리운 이를 생각하다

夜雨西風葉盡空

야우서풍엽진공

밤비와 가을바람에 잎은 다 져 비었는데

雙鴉來啄柿枝中

쌍아래탁시지중

까마귀 한 쌍이 날아와 감나무 가지 사이를 쪼는구나

繁陰長夏遮藏處

번음장하차장처

짙은 그늘 긴 여름날 가려 감추어 두었던 자리에

萬木凋時分外紅

만목조시분외홍

온 나무 시들 때에 유달리 붉게 빛나는구나

밑줄 친 제1·2·4구 끝의 空(공)·中(중)·紅(홍)이 상평 일동(上平 一東) 압운자이다.

제1구를 夜雨 / 西風 / 葉盡空(야우 / 서풍 / 엽진공)으로 끊어 읽으면 칠언 특유의 ‘2 + 2 + 3’ 호흡이 또렷이 살아난다.

여섯째 단계 · 성률과 다음자(多音字) 점검 — 평측·점대와 문맥의 성조를 검증한다

작법의 착안초고를 완성한 뒤 격률 검사기를 통해 각 구의 2·4·6번째 평측 교차와 연 사이의 점대(粘對), 그리고 고평·하삼평 유무를 확인한다. 특히 뜻에 따라 평성과 측성이 갈리는 다음자(多音字)는 기계적으로 글자를 바꾸려 하지 말고, 이 시의 문맥에서 어떤 뜻으로 쓰였는지를 기준으로 판정한다.

작자의 판단검사기에서 안내된 다섯 개의 다음자 — ‘공(空, 비다→평성)’, ‘중(中, 가운데→평성)’, ‘장(長, 길다→평성)’, ‘장(藏, 감추다→평성)’, ‘분(分, 분수·정도→거성·측성, 분외[分外])’ — 를 문맥의 뜻과 대조하여 모두 해당 자리의 요구 평측에 부합함을 확인하고 작품을 완성했다.

한시나루 격률 검사기로 이 작품을 점검하면 성률 규칙 위반(붉은 표시)은 0건이며, 확인 안내(노란 표시)로 다음자(多音字) 다섯 글자(空·中·長·藏·分)가 제시된다. 다섯 글자 모두 이 시의 문맥에서 의도한 뜻과 성조에 정확히 부합한다.

1구
仄仄平平仄仄平
2구
平平平仄仄平平
3구
平平平仄平平仄
4구
仄仄平平仄仄平

제1구 둘째 글자 ‘우(雨)’가 측성이므로 측기식(仄起式)이며, 제1구 끝 글자 ‘공(空)’까지 압운한 측기수구압운(仄起首句押韻)의 정격을 따른다. 제2구 셋째 글자 ‘래(來, 평성)’와 제3구 셋째 글자 ‘장(長, 평성)’은 ‘일삼오불론(一三五不論)’에 따라 시어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살린 자리이며, 네 구의 2·4·6번째 핵심 박자(1구 仄·平·仄, 2구 平·仄·平, 3구 平·仄·平, 4구 仄·平·仄)는 한 구 안의 평측 교차(2·4·6 부동)와 구절 사이의 점대(粘對: 1·2구 對, 2·3구 粘, 3·4구 對)를 빈틈없이 지켰다.

6. 작법 용어 사전 (22항목)

쓰기 작업실과 격률 검사기에서 쓰이는 스물두 개 핵심 용어의 성률적 정의와 실제 작품 용례이다. 한자 시구 위에 마우스를 올리면 개별 글자의 음훈과 평측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결구 · 합구(結句 · 合句)

절구의 제4구(또는 율시의 제8구·미련)로서 앞서 펼치고 전환한 시상을 하나로 거두어들이며 긴 여운으로 마무리하는 마지막 구절이다.

결구(結句) 또는 합구(合句, 기승전합·기승전수의 마지막 단계)는 한 편의 시나 단락을 맺는 구절이다. 앞서 기·승·전을 통해 쌓아 올린 경물과 사건을 날것의 설명으로 요약하기보다, 정감이 스며든 한 장면의 이미지(경물 결구)나 되묻는 물음, 혹은 절제된 동작으로 맺어 책을 덮은 뒤에도 독자의 마음속에 잔상이 남게 한다. 창작 순서에서는 이 결구의 착상과 압운 글자를 가장 먼저 정한 뒤 앞 구절들을 역산해 나가는 경우가 많다.

예: 夜半鐘聲到客船 (한밤중 종소리가 나그네 배에 닿아오네) / 王孫歸不歸 (떠난 그대는 돌아올까 돌아오지 않을까)
장계 〈풍교야박〉은 밤 종소리의 여운으로, 왕유 〈송별〉은 그리움 어린 물음으로 결구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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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련(頸聯)

율시 여덟 구 가운데 시상의 국면을 전환하는 제5구와 제6구를 묶어 부르는 셋째 연이다.

경련(頸聯, 목 경)은 턱(함련) 아래의 목에 비유한 이름으로, 기승전결로 분석할 때 흔히 전(轉)에 대응시킨다. 함련과 마찬가지로 출구와 대구 사이에 엄밀한 대장(對仗)을 갖추는 것이 원칙이며, 앞선 함련이 주로 눈앞의 자연 경물을 그렸다면 경련에서는 인사(人事)나 역사적 회고, 시간의 추이, 내면의 사유로 시선의 각도를 바꾸어 시가 단조로운 풍경 나열에 머물지 않게 한다.

예: 烽火連三月 家書抵萬金
두보 〈춘망〉의 경련(제5·6구). 함련의 꽃과 새에서 전쟁의 지속과 가족의 안부라는 절실한 인사(人事)로 초점을 전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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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평(孤平 · 孤平救拗)

압운하는 평성 구절에서 운자(끝 글자)를 제외한 나머지 글자 가운데 평성이 단 하나만 남거나 측성 사이에 평성 하나가 고립되는 금기이다.

고평(孤平, 외로운 평성)은 압운하는 평성 구절에서 평성이 고립되는 배열을 가리키며, 정의 범위에 따라 좁은 뜻과 넓은 뜻이 함께 쓰인다. 좁은 뜻(왕력 등)으로는 오언 압운구 ‘平平仄仄平’(칠언 ‘仄仄平平仄仄平’)에서 구절 끝 운자를 제외한 평성이 단 하나만 남는 경우(예: ‘仄平仄仄平’)만을 고평이라 부르고, 넓은 뜻(성기옥 『한시의 맛』 등)으로는 구절 안에서 ‘仄平仄’처럼 측성 사이에 평성 하나가 고립되는 배열까지 고평에 포함하여 경계한다. 부득이 시어 때문에 고평 자리에 측성을 써야 할 때 오언 제3자(칠언 제5자)를 평성으로 바꾸어 균형을 되살린다고 설명하는 방식을 고평구요(孤平救拗, 예: ‘仄平平仄平’)라 한다.

예: 오언 정격 平平仄仄平 → 제1자를 仄으로 바꾸면 仄平仄仄平(고평 발생) → 제3자를 平으로 바꿔 仄平平仄平(구요)
일삼오불론만 믿고 ‘平平仄仄平’의 첫 글자를 측성으로 바꾸면 둘째 글자 평성이 앞뒤 측성 사이에 고립되는 고평이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공대(工對)

대장(對仗)에서 출구와 대구의 글자가 품사·문법 구조뿐 아니라 천문·지리·초목·색채·숫자 같은 세부 의미 범주(사류)까지 정밀하게 짝을 이루는 대법이다.

공대(工對, 정교할 공)는 대장의 정밀도가 가장 높은 형태이다. 전통 작법서에서는 명사를 천문(해·달·바람·비)·지리(산·강·성곽·들)·시령(계절·아침·저녁)·화목(꽃·나무·풀)·금수(새·짐승)·색채·숫자·인륜 등의 작은 의미 부류(문류 門類)로 나누는데, 출구와 대구의 같은 자리에 놓인 단어가 이 세부 범주 안에서 정확히 짝을 이룰 때 공대라 부른다.

예: 漠漠水田飛白鷺 陰陰夏木囀黃鸝
왕유 〈적우망천장작〉 함련. 첩자(漠漠/陰陰), 지리·초목(水田/夏木), 동사(飛/囀), 색채+조류(白鷺/黃鸝)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린 공대의 전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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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대(寬對)

대장에서 세부 의미 범주에 얽매이지 않고 명사는 명사끼리, 동사는 동사끼리 문법 품사와 구문 구조만 맞추어 넉넉하게 짝짓는 대법이다.

관대(寬對, 너그러울 관)는 세부 사류(천문·지리 등)의 일치를 요구하지 않고, 명사는 명사끼리, 동사·형용사 등도 같은 문법 기능끼리 문장 성분과 평측 대립만 맞추어 짜는 대장이다. 율시의 수련(1·2구)이나 미련(7·8구), 또는 시상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세부 범주 일치보다 중요할 때 흔히 쓰인다.

예: 명사구(일반 사물) ↔ 명사구(추상 관념 또는 다른 범주 사물) + 동사구 ↔ 동사구
품사와 문장 짜임, 평측 대립을 기본 골격으로 삼아 시상의 호흡을 넉넉하게 살린다.

구(句)

한시에서 호흡과 의미가 일단락되는 한 줄 단위로, 오언은 다섯 글자, 칠언은 일곱 글자로 이루어진다.

구(句)는 시를 구성하는 기본 시행(詩行)이다. 근체시에서 한 구 안의 글자들은 낱낱이 흩어지지 않고 일정한 의미·낭송 단위로 묶인다. 오언(五言)은 앞의 두 글자와 뒤의 세 글자가 나뉘는 ‘2+3(또는 2+1+2)’의 호흡을 기본으로 삼고, 칠언(七言)은 앞의 네 글자가 두 자씩 묶이고 뒤의 세 글자가 이어지는 ‘2+2+3(또는 2+2+1+2)’의 호흡을 기본으로 삼는다. 한 구 안에서 짝수 자리인 2·4(·6)번째 글자는 리듬의 기둥 역할을 하므로 평성과 측성이 반드시 번갈아 놓여야 하며(2·4·6 부동), 시어를 배치할 때도 이 의미 마디와 소리 마디가 자연스럽게 일치하도록 다듬어야 한다.

예: 白日依山盡
왕지환(王之渙) 〈등관작루(登鸛雀樓)〉의 제1구. ‘백일(白日, 2) + 의산진(依山盡, 3)’의 호흡으로 ‘밝은 해가 산에 기대어 다 넘어간다’는 장면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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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체(近體)

남북조 영명체(永明體)의 성률 탐색을 거쳐 당대(唐代)에 확립된, 엄격한 평측·압운·점대 법칙을 따르는 시체이다.

근체시(近體詩)는 한위육조(漢魏六朝) 이래의 전통적인 고체시(古體詩)와 구별하여 당나라 때 새롭게 완성된 정형시를 일컫는 말로, 당시(唐詩)의 주류를 이루며 금체시(今體詩)라고도 부른다. 남조 제(齊)나라 영명 연간에 주옹(周顒)·심약(沈約) 등이 한자의 사성(四聲)과 팔병(八病)을 따져 시의 음악성을 추구한 데서 싹터, 초당의 심전기(沈佺期)·송지문(宋之問)에 이르러 2·4·6 평측 부동, 점대(粘對), 고평(孤平)·하삼평(下三平) 금지, 일운도저(一韻到底)의 규칙으로 정립되었다. 도연명(陶淵明)의 시처럼 외형상 5자 8구이더라도 당대 이전의 작품이거나 이러한 근체 성률을 따르지 않으면 근체시가 아니라 고체시로 분류한다. 한시나루의 격률 검사기는 바로 이 근체시의 성률 규범을 기준으로 삼는다.

예: 風急天高猿嘯哀 渚清沙白鳥飛回
두보의 칠언율시 〈등고(登高)〉 수련. 구절마다 평측의 교차와 대장, 압운이 빈틈없이 맞물린 근체시의 백미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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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起句)

절구의 제1구(또는 율시의 수련)로서 시의 배경이나 정황을 제시하며 첫 호흡을 여는 구절이다.

기구(起句)는 기승전결의 첫 단계인 기(起)를 맡는 자리이다. 눈앞의 시간과 계절, 장소의 풍경을 제시하여 시상을 여는 경물 기법이나 시인의 행동·상황을 바로 꺼내는 서사 기법 등이 쓰인다. 다만 실제 창작에서는 첫 구절부터 독립적으로 고정해 두고 짓기보다 결구(제4구)나 중심 연의 시상을 먼저 세운 뒤 거기에 어울리는 도입부로 기구를 역산해 다듬는 경우가 많다.

예: 月落烏啼霜滿天 (달 지고 까마귀 우는데 서리 기운 하늘에 가득하고)
장계 〈풍교야박〉의 기구(제1구). 가을밤 강변의 시각·청각·촉각적 배경을 단 일곱 글자로 열어젖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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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결(起承轉結)

절구의 네 구나 율시의 네 연이 시상을 열고(起), 이어받고(承), 전환하고(轉), 여운으로 맺는(結) 서술 구조이다.

기승전결(起承轉結)은 한시가 짧은 분량 안에서 단조로움을 피하고 입체적인 깊이를 얻는 시상 전개의 원리이다. 기(起)에서는 시의 배경이나 계기를 제시하여 문을 열고, 승(承)에서는 기구에서 꺼낸 정경을 구체적인 사물이나 움직임으로 이어받아 발전시킨다. 가장 중요한 자리는 제3구(율시에서는 경련)인 전(轉)으로, 여기서 시선의 방향이나 시간대, 혹은 사유의 층위를 한 번 크게 비틀어 새로운 국면을 열어야 시가 평면적인 설명에 그치지 않는다. 마지막 결(結)에서는 앞서 펼쳐 놓은 정경과 전환된 사유를 하나의 선명한 이미지나 정감으로 아우르며 독자의 마음에 긴 여운을 남긴다.

예: 起 빈 감나무 가지 → 承 감을 쪼는 까마귀 → 轉 한여름 녹음의 회상 → 結 서리 속 몇 점 붉은 감
작례 〈정시유회〉는 가을 아침의 현실(起·承)에서 지난 여름의 기억(轉)으로 시간을 전환한 뒤 다시 눈앞의 붉은 감(結)으로 수렴한다.

다음자(多音字)

하나의 한자가 문맥의 뜻이나 품사에 따라 서로 다른 성조(평성·측성)와 운목으로 읽히는 글자이다.

다음자(多音字, 또는 파음자)는 글자 모양은 하나이지만 쓰이는 뜻에 따라 독음이나 성조가 갈리는 한자이다. 예컨대 ‘길 장(長)’은 ‘길다·오래다’라는 형용사로 쓰일 때는 평성(하평 칠양)이지만, ‘자라다·어른·우두머리’라는 동사나 명사로 쓰일 때는 상성(측성)이 된다. 마찬가지로 ‘빌 공(空)’은 ‘비다·하늘’일 때 평성이지만 ‘빈틈·비우다’일 때 거성(측성)이며, ‘가운데 중(中)’은 ‘가운데·안’일 때 평성이지만 ‘적중하다·맞다’일 때 거성(측성)이고, ‘볼 간(看)’이나 ‘바랄 망(望)’, ‘무거울 중(重)/거듭 중(重)’ 역시 뜻에 따라 평측이 갈린다. 『한시의 맛』에서는 이처럼 다음자의 뜻을 살피지 않고 엉뚱한 성조나 운목에 쓰는 실수를 별운(別韻)이라 하여 깊이 경계한다.

예: 長夏(장하, 긴 여름 → 平) / 分外(분외, 정도에 넘치게 → 仄)
작례 〈정시유회〉에는 空·中·長·藏·分 다섯 글자의 다음자가 쓰였으며, 격률 검사기는 문맥에 맞는 성조인지 확인하도록 안내한다.

단요 · 쌍요(單拗 · 雙拗)

청대 『율시정체(律詩定體)』 주기 등에 보이는 평측 변형의 명칭으로, 한 구 안의 변화와 두 구 사이의 연동 변화를 구별해 설명할 때 쓰인다.

왕사정(王士禎)의 『율시정체』는 주기에 단요(單拗)·쌍요(雙拗)의 법을 밝힌다고 적는다. 조집신(趙執信)의 『성조보』 권1은 당인의 실제 구절에 한 구 안의 평측 변화와 출구·대구 사이의 구제 관계를 주석으로 설명한다. 후대 입문서에서는 이를 본구자구(당구자구)·대구상구와 연결해 설명하기도 하지만, 명칭과 예시의 범위가 언제나 일치하지 않으므로 각 문헌의 용법을 구별해야 한다.

예: 한 구 안의 변화: 暮禽相與還(仄平平仄平) / 두 구 사이의 구제: 苒苒跡始去(仄仄仄仄仄) 悠悠心所期(平平平仄平)
왕유 〈귀숭산작〉 제4구는 본구 안의 변화로, 두목 〈구계하일송노패수재〉 제5·6구는 『성조보』가 출구·대구 사이의 구제로 설명한 예로 읽는다. 이 위치별 분류를 단요·쌍요와 기계적으로 동일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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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대 · 자대(當句對 · 自對)

한 구절 안에서 앞뒤 시어들이 스스로 짝을 이루는 방식으로, 그 구절 전체가 다시 상대 구절과도 대장을 이룰 수 있다.

당구대(當句對)는 남송의 홍매(洪邁)가 『용재속필(容齋續筆)』 권3 「시문당구대(詩文當句對)」에서 당인의 시문을 분석하며 제시한 용어로, 구중대(句中對) 또는 자대(自對)라고도 부른다. 한 구절 내부에서 두 글자씩(예: ‘풍급[風急]’과 ‘천고[天高]’, ‘저청[渚清]’과 ‘사백[沙白]’) 먼저 자체적인 짝을 이루고, 그 구절 전체가 다시 다음 구절과 연 단위의 대장을 이루어 리듬의 밀도를 배가시킨다. 자대 덕분에 구절 내부의 균형이 이미 잡혀 있으므로 상대 구절과의 범주 대응이 한결 유연해지기도 한다.

예: 風急(바람 급함)↔天高(하늘 높음) 猿嘯哀 / 渚清(물가 맑음)↔沙白(모래 흼) 鳥飛回
두보 〈등고〉 제1·2구. 각 구의 앞 네 글자 안에서 ‘풍급/천고’, ‘저청/사백’이 스스로 짝(당구대·자대)을 이루면서 1구와 2구 전체가 다시 대장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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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자구 · 대구상구(當句自救 · 對句相救)

요구(拗句)로 생긴 평측의 불균형을 같은 구 안의 다른 글자 자리에서 보완하면 당구자구, 짝을 이루는 상대 구에서 보완하면 대구상구라 한다.

후대 시율학에서 구요(救拗)의 방식을 설명할 때 쓰는 두 가지 하위 범주이다. 당구자구(當句自救, 또는 본구자구 本句自救)는 한 구절 안에서 특정 글자의 평측이 정격을 벗어났을 때 같은 구 안의 다른 자리 평측을 바꾸어 그 구절 안에서 소리 균형을 회복한다고 설명하는 방식이다(예: 고평을 피하려 오언 제1자 仄 대신 제3자를 平으로 바꾸어 ‘仄平平仄平’으로 만드는 경우, 또는 출구 끝을 ‘平仄平仄’으로 바꾸는 경우). 대구상구(對句相救, 또는 양구상구 兩句相救)는 출구의 제3·4자 등이 측성으로 쏠렸을 때 짝이 되는 대구의 제3자(칠언 제5자)를 평성으로 바꾸어 한 연 전체의 호흡으로 균형을 맞춘다고 설명하는 방식이다. 다만 이 명칭들은 후대 작법서의 분석 틀이므로 모든 고전 변격에 기계적으로 적용하지는 않는다.

예: 당구자구 예: 清新庾開府(平平仄平仄, 제3·4자 전환) / 대구상구 예: 출구 제3·4자 仄仄 ↔ 대구 제3자 平
두보 〈춘일억이백(春日憶李白)〉 제3구 ‘청신유개부(清新庾開府)’는 후대 시론에서 대표적인 본구자구(단요) 사례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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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對偶)

문장이나 시가에서 구조와 말뜻이 짝을 이루는 두 구절을 나란히 배치하는 고전 수사학의 보편 원리이다.

대우(對偶, 또는 여사 麗辭)는 한문 문장과 시가 전반에서 짝을 맞추어 표현하는 수사 방식을 넓게 가리키는 말이다. 남조 양나라 유협(劉勰)의 『문심조룡(文心雕龍)』 「여사(麗辭)」편에서 이미 언대·사대·정대·반대의 네 가지 대우 원리를 체계화했으며, 당대 이후 성률 법칙(평측의 반대 맞물림)과 결합하여 근체 율시의 함련·경련에 요구되는 대장(對仗)으로 정교화되었다. 따라서 고전 문론의 대우 분류와 후대 율시 작법의 대장 분류(공대·인대·관대·차대)는 서로 겹치면서도 시대의 층위가 다른 체계임을 유의해야 한다.

예: 『문심조룡』 「여사」의 4대우: 언대(言對) · 사대(事對) · 정대(正對) · 반대(反對)
대우는 산문(변려문)과 고시·근체시를 아우르는 상위 수사 개념이며, 근체시에서 평측 규칙과 결합한 형태를 특히 대장이라 부른다.

대장(對仗)

율시의 함련(3·4구)과 경련(5·6구)에서 출구와 대구의 글자마다 품사·문법 구조·의미 범주를 나란히 짝지우는 수사법이다.

대장(對仗)은 의장대 병사들이 좌우로 마주 서듯 두 구절의 어휘와 문장 짜임을 대칭으로 맞세우는 기법으로, 대구(對句) 또는 대우(對偶)라고도 한다. 출구와 대구의 같은 자리에 명사는 명사끼리(천문·지리·초목·금수·방위·색채·숫자 등 같은 의미 범주일수록 정교한 공대[工對]가 됨), 동사는 동사끼리, 형용사는 형용사끼리 대응시키며 구문 구조(예: 주어+술어+목적어)까지 일치시킨다. 이 대장은 시각적·의미적 대칭뿐 아니라 성률상으로도 출구와 대구의 평측이 정반대로 맞물려야 완성된다. 다만 『한시의 맛』에서 강조하듯, 글자만 짝지었을 뿐 출구와 대구의 뜻이 사실상 똑같거나 함련과 경련 두 연의 문장 틀이 판박이처럼 겹치는 것은 합장(合掌)이라 하여 엄격히 피한다.

예: 白日依山盡 黃河入海流
왕지환 〈등관작루〉의 1·2구. 백일(白日, 색채+천체)과 황하(黃河, 색채+지리), 의산(依山, 동사+명사)과 입해(入海, 동사+명사), 진(盡)과 류(流)가 치밀한 대장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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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용 · 독용(同用 · 獨用)

과거 시험과 운서 규정에서 인접한 운목을 함께 섞어 압운하도록 허용한 것을 동용, 한 운목 안에서만 압운하도록 한 것을 독용이라 한다.

『절운』과 『광운』(206운)의 세분된 운목 가운데는 실제 시인들의 발음에서 구별하기 어렵거나 글자 수가 지나치게 적은 운목들이 있었다. 이에 당·송대의 과시(科試) 규정과 『광운』·『예부운략』에서는 음가가 가까운 이웃 운목들을 한데 묶어 함께 압운해도 좋다고 허락했는데 이를 동용(同用)이라 하고, 다른 운목과 섞지 말고 단독으로만 압운하도록 규정한 것을 독용(獨用)이라 한다. 이 동용 묶음들이 금대 왕문울본·남송 유연본에 이르러 아예 하나의 운목으로 합쳐지면서 106운(또는 107운) 평수운 체계가 탄생했다.

예: 『광운』 상평 一東(독용) / 二冬·三鍾(동용 → 평수운 二冬으로 통합)
206운의 동용·독용 규정이 후대 평수운 106운 통합의 직접적인 모태가 되었다.

동운(同韻)

두 글자 이상이 운서의 같은 운목(韻目) 안에 속하여 한 시에서 함께 압운할 수 있는 관계이다.

동운(同韻)은 평수운 등 기준 운서에서 동일한 운목 아래 수록된 글자들의 관계를 뜻한다. 근체시는 한 편 전체를 하나의 운목으로 일관되게 압운해야 하므로(일운도저), 압운 자리에 놓이는 모든 운각은 서로 동운 관계여야 한다. 현대 한국어 한자음의 모음이나 받침이 같아 보여도(예: 東[동]과 冬[동]) 평수운에서 다른 운목으로 갈려 있으면 동운이 아니므로 함께 압운할 수 없다.

예: 空(공) · 中(중) · 紅(홍) — 모두 평수운 상평 제1운 일동(一東)에 속하는 동운 글자
우리말 소리가 아니라 평수운의 운목 소속이 같아야 동운으로 인정된다.

련(聯)

나란히 이어지는 두 구(출구와 대구)를 하나로 묶은 단위로, 율시는 네 연(수련·함련·경련·미련)으로 짜인다.

련(聯, 또는 연)은 의미와 성률이 짝을 이루는 두 구의 결합이다. 한 연 안에서 앞선 홀수 구를 출구(出句), 뒤따르는 짝수 구를 대구(對句)라 부르며, 출구와 대구는 2·4·6번째 글자의 평측이 서로 정반대가 되어야 소리의 대비가 또렷해진다(對의 원칙). 여덟 구로 이루어진 율시는 네 개의 연으로 구성되는데, 1·2구를 수련(首聯, 또는 기련), 3·4구를 함련(頷聯), 5·6구를 경련(頸聯), 7·8구를 미련(尾聯, 또는 결련)이라 일컫는다. 특히 함련과 경련은 시의 허리에 해당하여 출구와 대구 사이에 정교한 문법적·의미적 대장(對仗)을 갖추어야 한다.

예: 感時花濺淚 恨別鳥驚心
두보 〈춘망〉의 함련(3·4구). 출구(3구)와 대구(4구)가 한 연을 이루며 평측이 반대로 맞서고 뜻과 품사가 엄밀한 대장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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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尾聯)

율시 여덟 구 가운데 시 전체의 정감을 거두어 여운으로 마무리하는 제7구와 제8구를 묶어 부르는 마지막 연이다.

미련(尾聯, 꼬리 미)은 기승전결로 분석할 때 흔히 결(結)에 대응시키며 결련(結聯) 또는 낙구(落句)라고도 부른다. 대장(對仗)을 이어 갈 수도 있고 자연스러운 산문적 호흡(산구 散句)으로 돌아올 수도 있으며, 앞선 세 연의 경물과 사건을 한 줄기 깊은 회포나 여운으로 수렴한다.

예: 白頭搔更短 渾欲不勝簪
두보 〈춘망〉의 미련(제7·8구). 나라와 가족을 근심하는 마음을 비녀조차 꽂기 힘들 만큼 성글어진 백발의 동작으로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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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절(反切)

한 글자의 발음을 다른 두 한자(반절상자와 반절하자)의 초성과 운모·성조를 결합해 표기하는 전통 주음법이다.

반절(反切)은 표음문자가 없던 시대에 한자의 음을 정확히 기록하기 위해 고안된 표기법으로, 『절운』과 『광운』 등 전통 운서의 기본 주음 방식이다. 앞에 오는 반절상자(反切上字)에서는 첫소리인 성모(초성)를 취하고, 뒤에 오는 반절하자(反切下字)에서는 가운뎃소리·끝소리인 운모(중성·종성)와 성조(사성)를 취하여 두 소리를 하나로 합쳐 읽는다. 따라서 어떤 글자의 반절하자가 어느 운목에 속하는지를 보면 그 글자의 평측과 압운 갈래를 정확히 판별할 수 있다.

예: 東, 德紅切 (동, 덕홍절: 德[d-] + 紅[-ung, 평성] → 동[dung])
『광운』에서 ‘동(東)’의 음을 ‘덕(德)’의 초성과 ‘홍(紅)’의 운모·평성을 합쳐 나타낸 반절 표기이다.

변격(變格)

표준 정격 평측 배열과 달라진 구절이나 작품 형식을 가리키며, 모든 변화를 오류나 요체로 단정할 수는 없다.

변격(變格, 또는 변체 變體)은 정격 기준선에서 벗어난 평측 배열이나 장법 구성을 아울러 일컫는 말이다. 홀수 자리(1·3·5자)의 일상적인 변화부터 짝수 자리(2·4·6자)의 평측 전환, 구절 끝 세 글자의 성조 쏠림, 대장 위치의 이동까지 다양한 층위가 있다. 연구자와 시대의 작법 기준에 따라 어떤 변격은 자연스러운 허용으로, 어떤 변격은 의도적인 요구·구요(拗救)로, 또 어떤 경우는 파율(破律)로 다르게 판정하므로 원문 관찰값과 이론적 판정을 구분해 살피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예: 맹호연 〈과고인장〉 제1구 故人具雞黍(仄平仄平仄) · 제5구 開軒面場圃(平平仄平仄)
제1구와 제5구의 넷째 글자에 평성(雞·場)이 놓여 정격 기준선과 다른 변격을 보이지만 당대 명작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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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四聲)

전통 한자음의 네 가지 성조 갈래인 평성(平聲)·상성(上聲)·거성(去聲)·입성(入聲)을 일컫는다.

사성(四聲)은 남북조 시대 심약(沈約)·주옹(周顒) 등이 중국어 한자음의 높낮이와 길이를 평(平)·상(上)·거(去)·입(入) 네 범주로 체계화한 성조 분류이다. 『절운』·『광운』·『평수운』 등 모든 전통 운서는 먼저 이 사성을 큰 틀로 삼아 권차를 나누고 그 아래에 운목을 배열한다. 한시 작법에서는 사성 가운데 소리가 평탄하고 긴 평성 하나를 평(平)으로 두고, 상성·거성·입성 세 가지를 묶어 측(仄)으로 대립시켜 평측 규칙을 운용한다.

예: 평성(平聲, 30운) · 상성(上聲, 29운) · 거성(去聲, 30운) · 입성(入聲, 17운) = 평수운 106운
조선 후기 『삼운통고』 계열 운서는 평·상·거 삼성을 3단으로 두고 입성을 책 뒤에 따로 모아 엮기도 했다.

상평 · 하평(上平 · 下平)

평수운에서 글자 수가 많은 평성 30운을 열다섯 운씩 위 권(상평)과 아래 권(하평)으로 나누어 붙인 권차 이름이다.

상평(上平, 15운)과 하평(下平, 15운)은 평수운 106운 가운데 평성 30운을 두 권으로 나누어 배열한 편제상의 명칭이다. 『광운』에서 평성 글자가 다른 성조보다 훨씬 많아 상평성(28운)과 하평성(29운) 두 권으로 분권했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일 뿐, 상평이 하평보다 소리가 더 높다거나 성조의 성질이 다르다는 뜻이 전혀 아니다. 현대 중국어 보통화의 제1성(음평)·제2성(양평) 구분과도 무관하므로 작법상 상평과 하평은 똑같은 평성(平聲) 자격을 지닌다.

예: 상평 15운(一東~十五刪) + 하평 15운(一先~十五咸) = 평성 30운
상평과 하평은 책의 1권·2권에 해당하는 구분일 뿐 성조의 높낮이를 가르는 표지가 아니다.

수련(首聯)

율시 여덟 구 가운데 첫머리를 여는 제1구와 제2구를 묶어 부르는 첫째 연이다.

수련(首聯, 머리 연)은 율시의 제1·2구로, 시상을 처음 일으킨다는 뜻에서 기련(起聯) 또는 발구(發句)라고도 부른다. 시의 시간적·공간적 배경이나 창작 동기를 제시하며, 대장(對仗)을 맞추어야 할 의무는 없으나 두보의 〈춘망〉이나 〈등고〉처럼 첫 연부터 웅장한 대장을 구사하여 긴장감을 높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예: 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
두보 〈춘망〉의 수련(제1·2구). 전란 속 봄을 맞은 장안성의 전경을 제시하며 시 전체의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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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구(承句)

절구의 제2구(또는 율시의 함련)로서 기구에서 열어 놓은 정경이나 사태를 이어받아 구체화하는 구절이다.

승구(承句)는 기승전결의 둘째 단계인 승(承)을 맡는 자리이다. 기구가 던진 배경이나 화두가 허공에 뜨지 않도록 구체적인 사물, 인물의 동작, 또는 그에 따른 정서를 바짝 붙여 이어 준다. 절구에서는 제2구 끝에 첫 정규 압운(수구압운일 때는 두 번째 압운)이 놓이므로 소리 면에서도 전반부 두 줄을 안정되게 매듭짓는 구실을 한다.

예: 江楓漁火對愁眠 (강가 단풍과 고깃배 불빛 마주하며 시름 속에 잠 못 이루네)
장계 〈풍교야박〉의 승구(제2구). 기구의 스산한 가을밤 풍경을 배 안 나그네의 시름 어린 시선으로 이어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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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詩想)

자연이나 인사(人事)를 마주했을 때 마음속에 일어난 감흥을 시의 질서로 빚어낸 생각의 줄기이다.

시상(詩想)은 시를 짓게 만드는 내면의 동기이자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사유와 정감의 흐름이다. 동아시아 시학에서는 이를 시경(詩經) 이래 ‘음영정성(吟詠情性, 본성과 정감을 진솔하게 읊음)’이라 불렀으나, 한시에서는 그 감흥을 날것의 감정어(‘슬프다’, ‘그립다’)로 직접 토로하기보다 눈앞의 경물(景物)에 의탁하여 드러내는 경물과 정감의 융합(情景交融)을 중시한다. 따라서 시상을 다듬을 때는 처음 떠오른 여러 생각 가운데 스물여덟 자나 마흔 자 안에 담을 핵심 장면만 남기고, 설명적인 말은 과감히 덜어내어 여운을 남기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한시의 맛』에서도 강조하듯, 격률은 시상을 또렷하게 전달하기 위한 음악적 그릇일 뿐이므로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 하는 시상의 확립이 모든 작법의 출발점이 된다.

예: 비바람 뒤 잎이 다 진 감나무 가지 끝에 붉은 감 몇 알이 서리를 견디며 남아 있다.
‘그립다’는 말을 직접 쓰지 않고, 빈 가지와 붉은 열매의 대비 속에 그리움의 시상을 기탁한다.

시어(詩語)

일상적인 산문 표현을 한시의 2자·3자 리듬과 성률, 고전적 함축미에 맞게 정련한 한자 어휘이다.

시어(詩語)는 시의 재질(材質)을 이루는 말이다. 우리말로 떠오른 생각을 그대로 한자로 일대일 직역하거나 현대적인 구어·속어를 쓰면 시의 격조가 떨어지고 일곱 글자 안에 깊은 뜻을 담기 어렵다. 한시의 시어는 대개 두 글자(예: 夜雨·西風·雙鴉·長夏·濃陰·秋霜) 또는 세 글자(예: 葉盡空·柿枝中·藏翠葉·數點紅)의 응축된 단위로 결합하여 오언의 ‘2+3’이나 칠언의 ‘2+2+3’ 호흡을 이룬다. 『한시의 맛』에서 경계하듯, 시어를 고를 때는 평측을 맞추겠다는 이유로 단어의 자연스러운 어순(자의의 순서)을 거꾸로 뒤집는 도운(倒韻, 예: 산수[山水]를 수산[水山]으로 쓰는 일)을 삼가고, 한 자 한 자가 시각적 형상과 정서를 동시에 환기하는 어휘를 가려 써야 한다.

예: 夜雨(밤비) · 西風(가을바람) · 繁陰(짙은 그늘) · 長夏(긴 여름) · 分外紅(유달리 붉다)
‘가을이 되어 밤에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었다’는 산문적 서술을 ‘야우서풍(夜雨西風)’ 네 글자의 시어로 압축한다.

시체(詩體)

한 구의 글자 수와 전체 구수(句數), 그리고 성률 규칙의 엄격함에 따라 나뉘는 한시의 형식 갈래이다.

시체(詩體)는 한시가 취하는 외형적·음율적 규격을 가리킨다. 크게 당대(唐代)에 성률 법칙이 확립된 근체시(近體詩, 금체시)와 그 이전의 비교적 자유로운 형식을 잇는 고체시(古體詩, 고시)로 나뉜다. 근체시 안에서는 다시 한 줄의 글자 수에 따라 오언(五言, 5자)과 칠언(七言, 7자)으로 갈리고, 전체 줄 수에 따라 네 줄로 완결되는 절구(絶句), 여덟 줄로 짜이는 율시(律詩), 열 줄 이상 대구를 이어 가는 배율(排律)로 구분된다. 시체를 고르는 일은 단순히 글자 수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상을 전개할 호흡의 길이와 대장(對仗)·평측(平仄)의 밀도를 선택하는 일이다.

예: 오언절구(20자) · 칠언절구(28자) · 오언율시(40자) · 칠언율시(56자)
제목과 현토, 문장부호는 시체가 규정하는 본문 글자 수에 포함하지 않는다.

실점 · 실대(失粘 · 失對)

연과 연 사이에서 평측을 이어 붙이지 못한 것을 실점(失粘), 한 연 안의 출구와 대구 사이에서 평측을 반대로 맞세우지 못한 것을 실대(失對)라 한다.

근체시의 점대(粘對) 규칙을 어긴 두 가지 경우를 가리킨다. 실대(失對)는 같은 연 안의 홀수 구(출구)와 짝수 구(대구)에서 2·4·6번째 글자의 평측이 서로 반대가 되지 않고 같아진 경우로, 한 연 내부의 소리 대칭이 무너진 것이다. 실점(失粘)은 앞 연의 대구(제2·4·6구)와 다음 연의 출구(제3·5·7구) 사이에서 2·4번째 글자의 평측 흐름을 같게 이어 붙이지 못하고 반대로 놓은 경우로, 홀수 구와 짝수 구의 성조 배열이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이 반복되는 단조로움을 낳는다. 다만 당대 초기 작품이나 특수한 변격율시(소위 절요체 등)에서는 실점 형태가 나타나는 예도 있어 시대별 맥락을 함께 살핀다.

예: 제2구 제2자 平 ↔ 제3구 제2자 仄 (2·3구 사이가 같지 않아 실점 발생)
연 안(1↔2, 3↔4)에서는 반대가 되어야 하고(어기면 실대), 연 사이(2=3, 4=5, 6=7)에서는 같아야 한다(어기면 실점).

압운(押韻)

정해진 구절(짝수 구와 수구압운 시 제1구)의 맨 끝에 같은 운목(韻目)에 속하는 글자를 배치하여 음악적 통일감을 주는 법칙이다.

압운(押韻)은 한시의 리듬을 지탱하는 가장 핵심적인 음악 장치이다. 근체시에서는 원칙적으로 평성(平聲) 운목 하나를 골라 짝수 구(절구의 2·4구, 율시의 2·4·6·8구) 끝에 일관되게 놓으며, 첫 구까지 운을 맞추는 수구압운(首句押韻)일 때는 제1구 끝에도 같은 운목의 글자를 쓴다. 이처럼 시 전체를 하나의 운목으로 끝까지 관통하는 원칙을 일운도저격(一韻到底格)이라 하며, 홀수 구(수구압운이 아닌 1구 및 3·5·7구) 끝에는 압운하지 않고 측성 글자를 놓아 소리의 긴장과 이완을 교차시킨다. 『한시의 맛』에서 경계하듯, 다른 운목의 글자가 섞이는 낙운(落韻), 한 시에 같은 압운자를 두 번 쓰는 중운(重韻), 시의 뜻과 어울리지 않는데 운만 억지로 맞춘 주운(湊韻)은 피해야 한다.

예: 1구 空(공) · 2구 中(중) · (3구 處, 측성 비압운) · 4구 紅(홍)
작례 〈정시유회〉는 1·2·4구 끝에 모두 평수운 ‘상평 일동(上平 一東)’에 속하는 평성 글자를 놓아 압운했다.

언대 · 사대(言對 · 事對)

유협의 『문심조룡』 「여사」편에서 자연의 말과 눈앞의 정경으로 짝을 짓는 것을 언대(言對), 옛 고사와 경전 전거를 인용해 짝을 짓는 것을 사대(事對)로 구분한 분류이다.

고전 문론 『문심조룡』 「여사」편이 대우(對偶)의 소재와 난이도를 기준으로 나눈 두 갈래이다. 언대(言對)는 역사적 전고에 기대지 않고 시인의 눈앞에 펼쳐진 사물과 일상 어휘만으로 문장 구조를 짝짓는 것이고, 사대(事對)는 옛 성현의 말씀이나 역사적 사건·인물 고사를 양쪽 구절에 나란히 끌어와 내용의 대응을 이루는 것이다. 유협은 「언대위이 사대위난(言對為易 事對為難, 언대는 쉽고 사대는 어렵다)」이라 평했으나, 당대 이후 서정시에서는 오히려 전고 없이 자연 경물만으로 빚어낸 청신한 언대가 높은 예술적 성취를 이루었다.

예: 「言對為易,事對為難。」 (언대는 짓기 쉽고 사대는 짓기 어렵다) — 유협, 『문심조룡』 「여사」
육조 문론의 대우 분류로서, 후대 율시의 공대·관대 분류와는 기준(전고 사용 여부)이 다르다.

요체(拗體 · 拗句 · 救拗)

시어의 생동감이나 고유명사를 살리기 위해 정격 평측을 벗어난 구절을 요구(拗句)라 하고, 다른 글자의 성조를 바꾸어 균형을 되살리는 법을 구요(救拗)라 한다.

정격 평측 배열에서 벗어난 구절을 요구(拗句)라 하고, 요구가 작품의 구법·평측 구성에 두드러지게 쓰인 시체나 작법을 요체(拗體)라 부른다. 또한 요구로 생긴 평측의 불균형을 같은 구 안의 다른 자리(당구자구)나 짝이 되는 반대 구(대구상구)에서 평측을 바꾸어 보완한다고 설명하는 후대의 분석 용어를 구요(救拗, 또는 요구 拗救)라 한다. 다만 요체와 구요의 성립 범위에는 학설 차이가 있어서, 성기옥의 『한시의 맛』이나 전통 작법서는 의도적 파격과 구제의 원리로 폭넓게 설명하는 반면, 당대 시론에는 후대의 정교한 구요 조항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연구도 함께 존재한다.

예: 揮手自茲去 蕭蕭班馬鳴
이백(李白) 〈송우인(送友人)〉의 미련(7·8구). 제7구 ‘휘수자자거(平仄仄平仄)’의 3·4자 평측을 바꾸어 이별의 동작을 살리고 제8구로 음악적 균형을 맞춘 구요의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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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목 · 평수운(韻目 · 平水韻)

운서(韻書)에서 각 운 묶음의 대표 글자로 내세운 표제 이름으로, 한시 작법에서는 106운 체계인 평수운을 표준으로 삼는다.

압운을 할 때는 오늘날의 한국어 발음이 비슷한 글자를 임의로 고르는 것이 아니라, 전통 운서(韻書)가 분류해 놓은 운목(韻目)을 기준으로 삼는다. 송·금 이후 정립되어 후대 시인들이 표준으로 삼은 평수운(平水韻) 체계(금대 왕문울의 106운 계통과 남송 유연의 107운 계통을 함께 살펴야 한다)은 한자를 사성(상평 15운, 하평 15운, 상성 29운, 거성 30운, 입성 17운)에 따라 총 106개의 운목으로 나눈다. 근체시는 기본적으로 평성으로 압운하므로 상평성 15운(一東·二冬·三江·四支 등)과 하평성 15운(一先·二蕭·三肴·四豪 등)을 합친 ‘평성 30운’ 안에서 하나의 운목을 선택한다. 이때 상평(上平)과 하평(下平)은 성조의 높낮이 차이가 아니라 평성 글자가 많아 운서의 권(卷)을 위아래로 나누어 실은 구분일 뿐이다.

예: 上平 一東(상평 일동): 東 · 同 · 空 · 風 · 中 · 紅 · 功 · 翁
현대 한국어 독음은 ‘동·공·풍·중·홍’으로 조금씩 다르더라도 고대 운모 체계에서 같은 ‘상평 일동’ 운목에 속하므로 함께 압운할 수 있다.

운부(韻部)

시운(詩韻)이나 음운학에서 같은 운으로 묶이는 글자들의 큰 범주를 가리키는 말이다.

운부(韻部)는 운서나 시가 분석에서 함께 압운할 수 있는 글자들의 묶음을 일컫는 범주명이다. 일반적인 한시 작법 해설이나 시운 사전에서는 개별 표제 이름인 운목(韻目, 예: 一東·二冬)과 거의 같은 뜻으로 섞어 쓰기도 하지만, 음운학 연구에서는 성조(평·상·거·입)를 아우르는 더 넓은 음운 범주를 가리킬 때 운부라는 말을 구별해 쓰기도 하므로 자료의 맥락을 함께 살펴야 한다.

예: 평수운 106운부(또는 106운목) 가운데 상평성 제1운 동(東)부
실용 작법에서는 운목과 겹쳐 쓰이나, 고전 시가의 압운 범위를 묶어 부를 때 자주 쓰인다.

운서(韻書)

한자의 성조(사성)와 운목(韻目)에 따라 글자를 분류해 시를 지을 때 압운과 평측을 찾아보도록 엮은 사전이다.

운서(韻書)는 한자의 독음과 운부를 일정한 체계로 배열한 책으로, 시대와 편찬 목적에 따라 분류 방식과 운목 수가 다르다. 수나라 육법언(陸法言)의 『절운(切韻, 601)』 193운과 당나라 손면(孫愐)의 『당운(唐韻)』의 여러 계통, 송나라 관찬 『광운(廣韻, 1008)』 206운을 거쳐, 송대 과거 시험용 『예부운략(禮部韻略, 1037)』의 동용(同用) 통합이 금대 왕문울(王文郁)의 『평수신간운략(平水新刊韻略)』 106운과 남송 유연(劉淵)의 『임자신간예부운략(壬子新刊禮部韻略)』 107운으로 이어지며 오늘날 한시 작법의 표준인 평수운(平水韻) 체계가 굳어졌다. 한국에서도 『삼운통고』·『삼운성휘』·『어정규장전운』 등 독자적인 편제의 운서가 활발히 편찬되었다.

예: 『절운』(193운) → 『광운』(206운) → 『평수운』(106운) → 『규장전운』(106운)
시대마다 운서의 권차와 운목 수가 달라졌으며, 근체시 창작에서는 평수운 106운을 기본 기준으로 삼는다.

운자(韻字 · 韻脚)

압운하는 구절의 맨 끝자리에 놓여 시 전체의 소리와 의미 중심을 잡아 주는 글자이다.

운자(韻字, 또는 압운자)와 운각(韻脚)은 압운하는 구절의 맨 끝자리에 놓이는 글자를 가리킨다. 『한시의 맛』에서는 한시에 쓰이는 모든 글자가 성모·운모·성조의 울림을 지녔다는 뜻에서 넓게 운자라 부르기도 하지만, 작법에서 좁은 의미의 운자·운각은 짝수 구(및 수구압운 시 제1구) 끝에 놓이는 압운 글자를 뜻한다. 운각은 한 구의 호흡이 멈추는 자리에서 길게 여운을 남기므로, 시의 주제와 정조를 가장 잘 응축한 글자여야 한다. 특히 절구의 제4구나 율시의 경련(5·6구)·미련(8구)처럼 시상이 정점에 이르는 자리의 운자를 먼저 확정한 뒤 나머지 구의 운자를 같은 운목 안에서 고르면, 운에 끌려 뜻이 왜곡되는 주운(湊韻)을 막고 수미일관한 작품을 지을 수 있다.

예: 紅(붉을 홍) → 空(빌 공) · 中(가운데 중)
작례 〈정시유회〉에서는 서리 속 붉은 감을 뜻하는 결구 끝의 ‘홍(紅)’을 중심 운자로 먼저 세운 뒤, 같은 상평 일동에서 ‘공(空)’과 ‘중(中)’을 골랐다.

유수대(流水對)

형식상으로는 출구와 대구가 대장(對仗)을 이루면서도, 의미상으로는 두 구절이 흐르는 물처럼 앞뒤로 이어져 하나의 문장을 이루는 대법이다.

일반적인 대장(정대·반대 등)은 출구와 대구가 나란히 마주 선 두 폭의 그림처럼 자리를 바꾸어도 뜻이 통하는 병렬 관계를 이룬다. 이와 달리 유수대(流水對)는 출구에서 시작된 동작이나 조건·원인이 대구로 흘러들어 완결되므로, 두 구절의 순서를 바꾸면 문맥이 성립하지 않는다. 율시의 함련·경련에서 대장의 정형미를 지키면서도 서사의 속도감과 호흡의 탄력을 살릴 때 빛을 발하는 기법이다.

예: 即從巴峽穿巫峽 便下襄陽向洛陽
두보 〈문관군수하남하북〉 미련(제7·8구). 파협에서 무협을 뚫고 지나 곧장 양양으로 내려가 낙양으로 향한다는 연속된 귀향 여정이 한 문장처럼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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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시(律詩)

여덟 구(句) 네 연(聯)으로 구성되며, 성률 규칙과 가운데 두 연의 대장(對仗)을 정밀하게 갖추는 근체시이다.

율시(律詩)는 초당(初唐) 시기에 정형이 확립되고 성당(盛唐)의 두보 등에 이르러 예술적 절정을 이룬 근체시의 핵심 양식이다. 오언율시는 5자 8구 40자, 칠언율시는 7자 8구 56자로 짜이며, 두 구씩 묶어 수련(首聯, 1·2구)·함련(頷聯, 3·4구)·경련(頸聯, 5·6구)·미련(尾聯, 7·8구)이라 부른다. 짝수 구인 2·4·6·8구 끝(수구압운일 때는 1구 포함)에 하나의 평성 운목으로 끝까지 압운하는 일운도저격(一韻到底格)을 따르며, 특히 가운데 두 연인 함련과 경련에서는 문법 구조와 품사, 평측이 짝을 이루는 대장(對仗)을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 『한시의 맛』에서 살피듯, 수련에서 시상을 열고 함련·경련의 정치한 대구를 거쳐 미련에서 정감을 수렴하는 건축적 균형미가 율시의 본령이다.

예: 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
두보(杜甫)의 오언율시 〈춘망(春望)〉 수련(1·2구). 전란에 부서진 도성과 무성한 봄 초목을 대비하며 여덟 줄의 장중한 호흡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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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대(鄰對)

대장에서 완전히 같은 세부 범주는 아니지만 천문과 시령, 지리와 궁실처럼 서로 인접한 의미 부류끼리 짝을 맞추는 대법이다.

인대(鄰對, 이웃 인)는 공대(工對)보다는 범주를 한 걸음 넓히되, 아무 명사나 맞세우는 관대(寬對)보다는 훨씬 긴밀한 유관 범주끼리 짝을 짓는 대장이다. 예컨대 하늘의 현상(천문)과 시간·계절(시령), 산천(지리)과 누각·성곽(궁실), 의복과 기물(기물)처럼 시적 연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웃 부류끼리 대응시켜 지나친 인공미를 덜고 생동감을 살린다.

예: 천문(해·달·별) ↔ 시령(봄·가을·밤·새벽) / 지리(산·강) ↔ 궁실(성곽·누대)
세부 문류는 다르나 인접한 의미 범주끼리 짝을 이루어 자연스러운 균형을 얻는다.

일삼오불론(一三五不論)

구절 안에서 리듬의 기둥인 2·4·6번째 자리는 평측을 엄격히 지키되, 홀수 자리인 1·3·5번째 글자는 평측 변동을 폭넓게 허용하는 원칙이다.

근체시 작법에는 예로부터 ‘일삼오불론 이사육분명(一三五不論 二四六分明)’이라는 격언이 전해 온다. 칠언시를 기준으로 한 구의 1·3·5번째(오언시에서는 1·3번째) 홀수 자리는 정격 평측 틀과 다른 소리의 글자를 쓰더라도 전체 리듬이 크게 무너지지 않으므로 시적 표현을 위해 유연하게 바꿀 수 있고, 반대로 2·4·6번째(오언시에서는 2·4번째) 짝수 자리는 구절의 박자를 지탱하는 중심축이므로 평측을 분명하게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다만 홀수 자리라 해서 무조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며, 1·3·5번째 글자를 바꾼 결과 외로운 평성이 생기는 고평(孤平)이나 구절 끝 세 글자가 같은 성조로 쏠리는 하삼평(下三平)·하삼측(下三仄)이 발생할 때는 이 허용이 제한된다.

예: 雙鴉來啄柿枝中(3자 來) · 繁陰長夏遮藏處(3자 長)
작례 〈정시유회〉에서 제2구 셋째 글자 ‘래(來, 평성)’와 제3구 셋째 글자 ‘장(長, 평성)’은 일삼오불론에 따라 자연스러운 시어를 살린 자리이다.

일운도저(一韻到底)

한 편의 시를 처음부터 끝까지 중간에 운목을 바꾸지 않고 하나의 운목으로만 일관되게 압운하는 원칙이다.

일운도저(一韻到底, 끝까지 한 운으로 관통함)는 근체시 압운의 핵심 규율이다. 고체시(고시)에서는 시가 길어지거나 정서가 바뀔 때 중간에 다른 운목으로 갈아타는 전운(轉韻, 또는 환운 換韻)이 자유롭게 허용되지만, 근체시인 절구·율시·배율에서는 첫 압운 자리부터 마지막 구절의 압운 자리까지 반드시 같은 평수운 운목 안의 글자만 써야 한다.

예: 두보 〈춘망〉 제2·4·6·8구 운각: 深(심) · 心(심) · 金(금) · 簪(잠) — 모두 하평 십이침(下平十二侵)
여덟 줄이 끝날 때까지 하평 십이침 한 운목만 일관되게 밟아 일운도저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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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성(入聲)

사성 가운데 끝소리가 ‘-p, -t, -k’(한국 한자음 받침 ㅂ·ㄹ·ㄱ)로 짧고 촉급하게 닫히는 성조로, 평측에서는 측성(仄聲)에 속한다.

입성(入聲)은 모음 뒤에 파열음 받침이 붙어 소리가 길게 늘어나지 않고 짧게 끊어지는 성조이다. 평수운 106운 가운데 입성은 일옥(一屋)부터 십칠흡(十七洽)까지 17개 운목을 차지하며, 근체시 평측 규칙에서는 상성·거성과 함께 측성(仄聲)으로 분류된다. 현대 중국어 보통화에서는 고대 입성 글자들이 제1·2·3·4성으로 흩어져 사라졌으나, 한국 한자음에는 고대 입성의 흔적이 ‘ㄱ·ㄹ(ㄷ의 변음)·ㅂ’ 받침으로 또렷하게 보존되어 있어 우리말 독음만으로도 입성(측성) 여부를 매우 높은 정확도로 판별할 수 있다.

예: 一(일, ㄹ) · 葉(엽, ㅂ) · 落(락, ㄱ) · 白(백, ㄱ) · 日(일, ㄹ) — 모두 입성(仄聲)
정지상 〈송인(送人)〉 제1구 ‘정전일엽락(庭前一葉落)’의 끝 세 글자 ‘일엽락’은 모두 입성 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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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법(章法)

한 편의 시 안에서 구절(句)과 연(聯)을 배치하고 시상의 흐름을 열고 이어 전환하며 거두는 전체 구성의 원리이다.

장법(章法, 또는 편법 篇法)은 글자를 고르는 자법(字法), 한 구절을 다듬는 구법(句法) 위에 놓이는 시 전체의 설계도이다. 먼저 시의 큰 뜻(대의 大意)을 세운 뒤 어느 자리에서 배경을 깔고 어느 자리에서 사유를 전환해 어떻게 여운을 남길지 포서(鋪敘)하는 과정을 다루며, 흔히 기승전결(또는 기승전수 起承轉收)의 네 단계로 설명된다. 다만 왕부지(王夫之)가 『강재시화(薑齋詩話)』에서 「기승전수 일법야(起承轉收 一法也, 기승전수는 한 가지 방법일 뿐이다)」라고 지적했듯, 참된 장법은 정해진 공식에 시상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시의 생생한 맥락을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데 있다.

예: 자법(字法: 글자 정련) → 구법(句法: 구절 호흡) → 장법(章法: 한 편 전체의 짜임과 기승전결)
작시법 문헌인 『시법가수(詩法家數)』 등은 먼저 대의를 세우고 구절을 배치하는 장법을 창작의 첫걸음으로 꼽는다.

전구(轉句)

절구의 제3구(또는 율시의 경련)로서 시상의 방향·시간·공간·시선을 새롭게 바꾸어 시의 입체감을 만드는 구절이다.

전구(轉句)는 기승전결의 셋째 단계인 전(轉)을 맡는 자리로, 특히 네 줄뿐인 절구에서 한 편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전환점으로 꼽힌다. 『시법가수』 등 고전 작법서에서도 절구의 묘미는 제3구의 전환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앞선 제1·2구가 현재의 눈앞 풍경을 그렸다면 제3구에서는 과거의 기억이나 미래의 상상, 혹은 멀리 떨어진 공간과 소리로 시선을 옮겨 놓아 제4구 결구가 힘 있게 수렴될 도약대를 마련한다. 소리 면에서도 수구압운 평운절구의 제3구 끝은 유일하게 압운하지 않는 측성 자리여서 긴장을 고조시킨다.

예: 欲窮千里目 (눈에 담을 천 리 풍경을 남김없이 보려면) / 春草明年綠 (해가 바뀌어 봄이 오면 풀빛은 되살아나겠지만)
왕지환 〈등관작루〉와 왕유 〈송별〉의 제3구(전구). 눈앞의 풍경이나 배웅 장면에서 시야의 확장·내년 봄의 시간으로 국면을 확 전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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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구(絶句)

네 구(句)로 시상을 완결하는 짧은 시형으로, 오언절구(20자)와 칠언절구(28자)가 있다.

절구(絶句)는 네 줄의 짧은 호흡 안에 기승전결(起承轉結)의 극적 전환과 여운을 담아내는 정형시이다. 한 줄에 다섯 자씩 놓는 오언절구는 스무 자, 일곱 자씩 놓는 칠언절구는 스물여덟 자로 이루어진다. 여덟 줄인 율시(律詩)와 달리 반드시 대구(對句, 대장)를 맞추어야 하는 의무가 없으나, 근체 절구(율절)는 각 구의 평측 교차와 연(聯) 사이의 점대(粘對), 그리고 2·4구(수구압운 시 1·2·4구) 끝에 같은 운목의 평성 글자를 놓는 압운 규칙은 엄격히 지킨다. 측운이나 비교적 자유로운 평측을 쓰는 고절(古絶)은 구별해 살핀다. 분량이 짧은 만큼 서사를 길게 늘어놓기보다 한순간의 포착과 제3구(전구)의 시선 전환, 제4구(결구)의 함축으로 승부하는 형식이다.

예: 霜葉紅於二月花
두목(杜牧) 〈산행(山行)〉의 결구(제4구). 가을 산길의 정경을 스물여덟 자로 그린 뒤 서리 맞은 단풍이 봄꽃보다 붉다는 한 구절로 시상을 응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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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대(粘對)

한 연 안의 출구와 대구는 평측을 반대로 맞세우고(對), 앞 연의 대구와 뒤 연의 출구는 평측을 같게 이어 붙이는(粘) 구절 연결 법칙이다.

점대(粘對)는 한 구 안의 ‘2·4·6 평측 부동’을 시 전체의 구절 사이로 확장한 성률의 뼈대이다. 먼저 ‘대(對)’는 같은 연(聯) 안에서 홀수 구(출구)와 짝수 구(대구)의 2·4·6번째 글자 평측이 서로 정반대가 되도록 맞세우는 원칙이다(예: 1구 2·4·6이 ‘仄·平·仄’이면 2구 2·4·6은 ‘平·仄·平’). 다음으로 ‘점(粘, 붙일 점)’은 연이 바뀔 때 앞 연의 짝수 구(2·4·6구)와 뒤 연의 홀수 구(3·5·7구)의 2·4(·6)번째 평측 흐름을 같게 이어 붙이는 원칙이다(예: 2구 제2자가 평성이면 3구 제2자도 평성). 만약 모든 구가 계속 반대로만 교차하면 홀수 구끼리, 짝수 구끼리 성조가 똑같아져 단조로워지므로, 연 안에서는 대비(對)시키고 연 사이에서는 이어 붙여(粘) 시 전체에 입체적인 성조의 파동을 만든다. 이를 어기면 실점(失粘) 또는 실대(失對)라 하여 근체시의 결함으로 본다.

예: 제2자 기준: 1구 雨(仄) ↔[對]↔ 2구 鴉(平) =[粘]= 3구 陰(平) ↔[對]↔ 4구 木(仄)
작례 〈정시유회〉에서 1·2구 둘째 글자는 ‘우(仄)↔아(平)’로 마주 서고(對), 2·3구 둘째 글자는 ‘아(平)=음(平)’으로 같게 이어진 뒤(粘), 3·4구 둘째 글자가 다시 ‘음(平)↔목(仄)’으로 맞선다(對).

정격(正格)

근체시 작법 체계에서 구절 내 2·4·6 평측 교차와 연 사이의 점대(粘對) 규칙에 따라 표준 기준형으로 제시하는 평측 배열이다.

정격(正格, 또는 정체 正體)은 오언·칠언의 절구와 율시에서 기식(평기·측기)과 수식(수구압운·수구불압운)의 네 가지 조합으로 도출되는 표준 평측 도식을 가리킨다. 정격표는 시를 짓거나 읽을 때 성률의 균형을 가늠하는 기준선 역할을 하지만, 실제 당·송 및 한국 고전 시인들의 작품에서는 홀수 자리(1·3·5자)의 허용이나 시어 선택에 따른 변격이 폭넓게 나타나므로 정격표만을 유일한 정답처럼 기계적으로 덮어씌워서는 안 된다.

예: 칠언절구 측기식 수구압운 정격: 仄仄平平仄仄平 / 平平仄仄仄平平 / 平平仄仄平平仄 / 仄仄平平仄仄平
한시나루 쓰기 화면의 평측 안내판은 이 정격 기준선을 바탕으로 각 칸의 평측을 보여 준다.

정경교융(情景交融)

시인의 내면 정감(情)과 눈앞의 자연 경물(景)이 따로 놀지 않고 서로 스며들어 하나가 되는 한시 미학의 핵심 원리이다.

정경교융(情景交融)은 동아시아 시학에서 시상을 빚어내는 가장 중요한 미적 기준으로, 왕부지(王夫之)가 『강재시화(薑齋詩話)』에서 「정경명위이 이실불가리(情、景名為二,而實不可離: 정과 경은 이름만 둘일 뿐 실제로는 결코 떨어질 수 없다)」라고 갈파한 원리이다. 초보자의 흔한 실수처럼 전반부에는 풍경만 나열하고 후반부에는 ‘슬프다·외롭다’ 같은 추상적 감정어만 적어 넣으면 정과 경이 쪼개지고 만다. 참된 한시는 경물을 묘사하는 어휘 자체에 시인의 시선과 감정이 배어 있어(경중유정 景中有情), 독자가 그 풍경을 읽는 순간 저절로 시인의 마음을 느끼게 만든다.

예: 「情、景名為二,而實不可離。神於詩者,妙合無垠。」 — 왕부지, 『강재시화』
작례 〈정시유회〉에서도 ‘그립다’는 말을 지우고 시든 나무들 사이 유독 붉은 감(‘萬木凋時分外紅’)이라는 경물 속에 정감을 녹여 냈다.

정대 · 반대(正對 · 反對)

짝을 이루는 두 구절이 서로 비슷한 방향의 뜻으로 나란히 보완하면 정대(正對), 상반된 이치나 정황을 맞세워 뜻을 선명히 하면 반대(反對)라 한다.

유협의 『문심조룡』 「여사」편에서 제시된 이래 근체시 대장의 의미 관계를 분석할 때도 널리 쓰이는 분류이다. 정대(正對)는 서로 다른 사물이나 장면을 그리되 두 구절이 같은 정조나 취지를 향해 나란히 모이는 방식이다(다만 뜻이 완전히 똑같아지면 합장[合掌]의 병폐에 빠지므로 구별해야 한다). 반대(反對)는 흥망·성쇠·고락·동정처럼 서로 반대되는 사태나 이치를 출구와 대구에 맞부딪치게 하여 주제를 강렬하게 부각하는 방식으로, 유협은 「반대위우 정대위열(反對為優 正對為劣)」이라 하여 반대의 긴장미를 높이 평가했다.

예: 반대 예: 國破山河在(나라 부서짐 ↔ 산하 남음) / 정대 예: 明月松間照 清泉石上流(맑은 산중 야경의 나란한 결합)
비슷한 정조를 다른 감각으로 그리는 정대와 상반된 사태를 대비하는 반대는 모두 대장의 핵심 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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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대(借對)

한 글자나 어휘가 지닌 다른 뜻(차의)이나 동음·유사음 글자(차음)의 연상을 빌려와 대구의 색채·숫자 등과 짝을 맞추는 기법이다.

차대(借對, 빌릴 차)는 시구 안에서는 원래의 문맥 뜻으로 쓰이면서도, 그 글자가 가진 또 다른 뜻이나 동음이의어의 글자 관계를 살짝 빌려 상대 구절과 정교한 대장(색채대·수목대 등)을 이루게 하는 고도의 시적 기교이다. 무엇을 빌리는가에 따라 뜻을 빌리는 차의대(借義對)와 소리를 빌리는 차음대(借音對)로 나뉘며, 후대 시론가들이 당송 명작의 대구를 분석하며 붙인 분류이므로 문맥의 본뜻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감상해야 한다.

예: 酒債尋常行處有(보통 심상 → 길이 단위 8척·16척 수량 차의) 人生七十古來稀(숫자 七十)
두보 〈곡강이수(曲江二首)〉 제2수 함련. 문맥상 ‘보통·예사’라는 뜻인 ‘심상(尋常)’에서 고대 길이 단위(수량)의 뜻을 빌려 ‘칠십(七十)’과 짝을 맞춘 차대의 대표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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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의대 · 차음대(借義對 · 借音對)

차대(借對)의 두 하위 유형으로, 어휘의 다른 뜻을 빌려 짝짓는 것을 차의대, 동음·유사음의 다른 글자를 연상시켜 짝짓는 것을 차음대라 한다.

차의대(借義對)는 한 단어가 지닌 다의성(多義性)을 활용하여, 시구에서는 제1의 뜻으로 쓰되 대구와의 대칭에서는 제2의 뜻(주로 숫자·색채·방위 등)을 빌려 짝을 맞추는 방식이다. 반면 차음대(借音對, 자료에 따라 성대 聲對라고도 부름)는 글자 자체의 다른 뜻이 아니라 발음이 같거나 비슷한 다른 글자(예: 맑을 청[清]에서 푸를 청[青]을, 붉을 주[朱]나 구슬 주[珠]의 동음 관계를 연상함)를 빌려 색채 등의 대칭을 이루는 방식이다. 다만 이러한 분류는 후대 작법 강의와 시화에서 정리한 해석 틀이므로 판본 이문과 함께 살핀다.

예: 차의대: 尋常(보통 / 8척·16척) ↔ 七十 / 차음대: 清晨(清→青 연상) ↔ 白日
두보 〈배정광문유하장군산림〉 제7수 경련 ‘야학청신출 산정백일장(野鶴清晨出 山精白日藏)’은 ‘청(清)’에서 ‘청(青)’의 소리를 빌려 ‘백(白)’과 맞세운 차음대 예시로 흔히 인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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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구 압운(首句押韻)

짝수 구뿐 아니라 시의 첫째 구(제1구) 끝 글자에도 같은 운목의 평성 글자를 놓아 첫머리부터 운율을 환기하는 방식이다.

근체시에서 압운은 짝수 구 끝에 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제1구 끝 글자까지 압운에 참여시키는 형식을 수구압운(首句押韻, 첫 구 압운)이라 하고, 제1구 끝을 측성으로 두어 압운하지 않는 형식을 수구불압운(首句不押韻)이라 한다. 일반적으로 오언시에서는 수구불압운이, 칠언절구와 칠언율시에서는 수구압운이 훨씬 널리 쓰인다. 제1구에 압운을 하면 1·2구가 연달아 같은 운으로 울리면서 시의 도입부가 유려하고 긴밀해지며, 이어지는 제3구 끝의 비압운(측성)과 대비되어 제4구 결구의 압운이 더욱 힘 있게 살아난다.

예: 遠上寒山石徑斜 白雲生處有人家
두목 〈산행〉의 1·2구. 제1구 끝 ‘사(斜)’와 제2구 끝 ‘가(家)’가 모두 하평 육마(下平 六麻) 운으로 수구압운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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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 · 대구(出句 · 對句)

한 연(聯)을 이루는 두 구절 가운데 앞에 놓이는 홀수 구를 출구(出句), 뒤에 짝지어 따라오는 짝수 구를 대구(對句)라 한다.

율시나 절구를 두 구씩 한 연으로 묶어 읽을 때, 먼저 말을 꺼내는 홀수 구(제1·3·5·7구)가 출구(出句)이고, 그 말을 받아 짝을 맞추며 매듭짓는 짝수 구(제2·4·6·8구)가 대구(對句)이다. 평운 근체시에서 출구(수구압운 제1구 제외)는 항상 측성으로 끝나 소리를 위로 열어 두고, 대구는 항상 평성 운자(운각)로 끝나 소리를 안정되게 받아 준다. 또한 함련과 경련에서는 출구와 대구가 문법 구조와 어휘 범주까지 대칭을 이루는 대장(對仗)을 형성한다.

예: 출구(제3구): 明月松間照(측성 끝) ↔ 대구(제4구): 清泉石上流(평성 압운)
왕유 〈산거추명〉의 함련에서 제3구 출구가 달빛을 꺼내면 제4구 대구가 샘물로 짝을 맞추어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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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운(仄韻)

평성이 아닌 상성·거성·입성(측성) 운목의 글자로 압운하는 방식으로, 평운 정격 근체시와 구별되는 형식이다.

측운(仄韻)은 구절 끝의 압운 자리에 측성(상·거·입성) 글자를 놓는 압운법이다. 당대 이후 확립된 근체시(절구·율시)의 정격은 평성 30운으로 압운하는 평운(平韻)을 원칙으로 삼지만, 고체시(고절·고시)나 고체와 근체의 경계에 놓인 절구 작품에서는 상성·거성·입성으로 압운한 측운시가 적지 않게 창작되었다. 〈춘효〉에서는 제1·2·4구 끝에 측성을, 제3구 끝에 평성을 놓는다. 다만 모든 측운 고절이 이 배열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예: 春眠不覺曉(仄) 處處聞啼鳥(仄) 夜來風雨聲(平) 花落知多少(仄)
맹호연(孟浩然) 〈춘효(春曉)〉. 제1·2·4구 끝 ‘효(曉)·조(鳥)·소(少)’를 모두 상성 십칠소(上十七篠)로 맞춘 대표적인 측운 경계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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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운(通韻)

서로 다른 운목에 속한 글자들을 한 시에서 함께 압운으로 인정해 쓰는 관계를 가리킨다.

통운(通韻)은 원래 별개의 운목으로 나뉘어 있는 글자들을 음가가 가깝다는 이유로 한 작품 안에서 넘나들며 압운하는 방식을 말한다. 고체시(古體詩)나 수구압운의 첫 구(고운격)에서 인접한 운목을 빌려 쓰는 현상을 설명할 때 자주 쓰이며, 문헌과 연구자에 따라서는 송대 『예부운략』의 동용(同用) 규정을 통운이라 부르기도 하고 동용보다 넓은 시대적·음운적 통용 관계를 가리키기도 하므로 출전의 용법을 함께 확인해야 한다.

예: 인접 운목 간 통용 압운 (고체시 통운 및 근체시 수구 차운 등)
엄격한 근체시 정격의 짝수 구 압운에서는 통운을 쓰지 않고 한 운목 안의 동운(同韻)을 지키는 것이 원칙이다.

평기 · 측기(平起 · 仄起 · 平收 · 仄收)

제1구의 둘째 글자(제2자)가 평성이면 평기식(平起式), 측성이면 측기식(仄起式)이라 부르는 시의 시작 평측 형식이다.

근체시의 전체 평측 짜임은 제1구의 리듬 기둥인 둘째 글자(제2자)가 평성이면 평기(平起), 측성이면 측기(仄起)라 부른다. 여기에 제1구의 끝 글자(수식, 收式)가 평성(수구압운, 平收)인지 측성(수구불압운, 仄收)인지를 결합하면 평기평수(平起平收)·평기측수(平起仄收)·측기평수(仄起平收)·측기측수(仄起仄收)의 네 가지 기본 정격 틀이 도출된다. 다만 실제 창작에서는 기식과 수식을 미리 정해 놓고 글자를 끼워 맞추기보다, 핵심이 되는 구절을 먼저 지은 뒤 점대(粘對) 원칙에 따라 앞뒤 구의 평측을 역산하면 기식은 자연스럽게 결정된다.

예: 夜雨西風葉盡空 — 제1구 제2자 雨(우)가 측성이므로 측기식(仄起式)
첫 글자 ‘야(夜)’가 아니라 둘째 글자 ‘우(雨, 상성·측성)’를 기준으로 측기식임을 판별한다.

평측 · 평성 · 측성(平仄 · 平聲 · 仄聲)

한자 고유의 사성(四聲)을 길고 평탄한 소리인 평성(平聲)과 높낮이·끊어짐이 있는 측성(仄聲)의 두 갈래로 나눈 성률 체계이다.

고대 한자음에는 평성(平聲, 전통적으로 평탄한 소리로 설명됨)·상성(上聲, 뒤가 높아지는 소리)·거성(去聲, 높았다가 낮아지는 소리)·입성(入聲, 짧고 촉급하게 닫히는 소리)의 사성(四聲)이 있었다. 근체시의 격률에서는 이 가운데 평성 하나를 ‘평(平)’으로 두고, 굴곡이 있거나 짧게 끊어지는 상성·거성·입성 세 가지를 묶어 ‘측(仄, 기울 측)’으로 대립시킨다. 한 구 안에서 평성과 측성을 규칙적으로 교차시키는 것(예: 仄仄平平仄仄平)이 곧 한시의 작곡 원리이다. 『한시의 맛』에서 안내하듯, 한국어 독음으로는 평성·상성·거성을 바로 가리기 어려워 운서를 확인해야 하지만, 받침이 ‘ㄱ·ㄹ·ㅂ’으로 끝나는 한자(예: 國·白·獨·葉·月·別·法·合 등, 단 우리말 고유 독음 변형 제외)는 대개 고대 입성의 흔적이므로 측성(仄聲)을 가늠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예외와 다음자는 운서에서 확인해야 한다.

예: 夜雨西風葉盡空 (仄仄平平仄仄平)
‘풍(風)·공(空)’은 평성이고, ‘야(夜)·우(雨)·엽(葉, ㅂ받침 입성)·진(盡)’은 측성이다. 2·4·6번째 글자가 ‘우(仄)·풍(平)·진(仄)’으로 번갈아 놓여 리듬을 이룬다.

하삼평 · 하삼측(下三平 · 下三仄)

구절 끝 세 글자가 모두 평성이면 하삼평(下三平), 모두 측성이면 하삼측(下三仄)이다. 정격 근체시에서 하삼평은 엄격히 피하지만, 하삼측을 금기로 보는 범위는 학설에 따라 다르다.

구절의 끝 세 글자(하삼자, 下三字)는 한 줄의 호흡이 매듭지어지는 자리이다. 끝 세 글자가 모두 평성인 하삼평(下三平, 삼평미·삼평조)은 근체시 압운구 끝에서 엄격히 피하는 금기로 꼽힌다. 반대로 끝 세 글자가 모두 측성인 하삼측(下三仄, 삼측미) 역시 피해야 할 병폐로 설명되곤 하나, 당대 시인들의 실제 작품에는 하삼측 구절이 적지 않게 나타나고 조집신(趙執信)의 『성조보(聲調譜)』도 앞의 두 글자 평측을 함께 보아야 한다고 설명하는 등 이를 금기로 보는 범위는 하삼평보다 학설이 갈린다.

예: …平平平(하삼평 금기) / …仄仄仄(하삼측 경계) → …仄仄平 또는 …平平仄으로 교차
작례 〈정시유회〉의 네 구 끝 세 글자는 ‘葉盡空(仄仄平)’, ‘柿枝中(仄平平)’, ‘遮藏處(平平仄)’, ‘分外紅(仄仄平)’으로 모두 세 글자 연속 동일 성조를 피했다.

함련(頷聯)

율시 여덟 구 가운데 수련의 뜻을 이어받아 펼치는 제3구와 제4구를 묶어 부르는 둘째 연이다.

함련(頷聯, 턱 함)은 사람의 신체에서 머리(수련) 바로 아래 있는 턱에 비유한 이름으로, 기승전결로 분석할 때 흔히 승(承)에 대응하여 수련에서 꺼낸 시상을 구체적인 경물이나 정황으로 넓혀 그린다. 근체 율시의 정격에서는 뒤이은 경련(5·6구)과 함께 반드시 출구와 대구의 짝을 맞추는 대장(對仗)을 갖추어야 하는 자리이다.

예: 明月松間照 清泉石上流
왕유 〈산거추명〉의 함련(제3·4구). 수련의 ‘가을 저녁 비 갠 산’을 이어받아 달빛과 샘물의 대장으로 펼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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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장(合掌)

대장을 맞춘 두 구절(출구와 대구)이 글자만 바꾸었을 뿐 실제로는 같은 뜻이나 같은 구문 틀을 되풀이하여 시적 긴장이 죽어 버리는 병폐이다.

합장(合掌)은 두 손바닥을 마주 합친 것처럼 출구와 대구의 의미가 똑같이 포개져 버린 결함을 가리킨다. 율시의 대장은 두 구절이 서로 다른 각도에서 정경을 비추거나 뜻을 확장해야 하는데, 출구에서 한 말을 유의어만 바꾸어 대구에서 그대로 반복하면(동어반복) 마흔 자·쉰여섯 자의 귀한 지면을 낭비하게 된다. 『한시의 맛』에서는 한 연 안의 의미 중복뿐 아니라 함련(3·4구)과 경련(5·6구) 두 연의 문장 구조가 판박이처럼 똑같이 짜이는 것 역시 넓은 의미의 합장으로 보아 경계한다.

예: 출구와 대구에 같은 뜻의 어휘(예: 憂/愁, 思/憶, 孤/獨)를 나란히 배치해 한 가지 뜻만 되풀이하는 경우
품사와 평측이 맞더라도 두 구절이 새로운 의미 층위를 보태지 못하면 합장의 병폐에 빠진다.

7. 참고한 책

이 안내서의 근체시 성률 체계(영명체의 사성팔병에서 당대 근체시로 정립된 2·4·6 평측 부동, 점대 원칙, 고평 및 하삼평·하삼측 금지, 요구와 구요의 원리), 우리 한자음 받침(ㄱ·ㄹ·ㅂ)을 통한 고대 입성(측성) 판별 기준, 그리고 제1구부터 순차적으로 메우지 않고 주제가 응결되는 구절의 뜻과 압운자를 먼저 확정한 뒤 나머지 구절의 운자와 평측을 역산하는 작법 설명은 다음 저서를 참조하여 작성했다.

직접 한 수를 지어 보려면

오늘 눈에 남은 풍경 한 장면을 우리말 산문으로 적는 일에서부터 첫 구절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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