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당의 시인들
初唐 (618~712) — 새로운 형식을 찾아서
당나라 건국 초기, 문단은 여전히 남북조 시대의 화려하지만 내용이 빈약한 궁체시(宮體詩)가 지배하고 있었다. 초당의 시인들은 이러한 유약함을 버리고 시에 '뼈대(기골)'를 세우기 시작했다.
6세에 글을 지은 신동이자 '초당사걸(初唐四傑)'의 으뜸. 20대 후반에 요절했으나, 그의 천재성은 강렬한 흔적을 남겼다.
대표작
《登王閣序》
"지는 노을은 외로운 오리 한 마리와 나란히 날고(落霞與孤鶩齊飛)..."
"한나라와 위나라의 품골로 돌아가자"고 외치며 복고주의를 제창했다. 그의 등장은 성당 시의 황금기를 여는 전주곡이었다.
대표작
《登幽州臺歌》
광활한 시공간 속 인간의 고독을 노래한 짧지만 웅장한 시이다.
평생 단 두 편의 시만 남겼으나, 그중 한 편으로 당나라 시 전체를 압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작
《春江花月夜》
달, 강, 꽃, 밤을 소재로 인생의 무상함과 우주의 영원함을 절묘하게 엮어냈다.
王勃, 楊炯, 盧照鄰, 駱賓王 네 사람을 일컫는다. 이들은 귀족 중심의 문학 풍토에서 벗어나 하급 관리로서 겪는 현실과 기개를 시에 담았다. 서로 경쟁하면서도 당나라 시의 엄격한 형식(근체시)을 정착시키는 데 함께 기여했다.
성당의 시인들
盛唐 (713~765) — 시의 황금시대
당 현종의 '개원의 치'로 국력은 정점에 달했고, 과거 제도의 정착으로 수많은 인재가 배출되었다. 그러나 시대의 끝자락에 터진 '안사의 난(755)'은 시인들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이백 — 시선(詩仙)
하늘에서 유배 온 신선. 술과 달, 그림자를 벗 삼아 거침없는 낭만을 노래했다.
대표작
《將進酒》, 《望廬山瀑布》, 《靜夜思》
두보 — 시성(詩聖)
평생 가난과 전란 속에 살았던 현실주의자.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의 고통을 대변했다.
대표작
《春望》, 《登高》, 《江村》
왕유 — 시불(詩佛)
시인이자 화가. "시 속에 그림이 있고(詩中有畫), 그림 속에 시가 있다(畫中有詩)"는 평을 듣는다. 불교에 심취해 '시불(詩佛)'로 불린다.
당나라를 멸망 직전으로 몰고 간 이 반란은 시의 색깔을 바꾸었다.
- 이백은 반란군 연루 의혹으로 유배를 가는 고초를 겪었다.
- 두보는 포로로 잡히거나 가족과 생이별하며 《春望》("나라는 깨어졌으나 산하는 그대로인데...") 같은 피눈물 나는 걸작을 남겼다.
중국 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만남이다. 44세의 이백과 33세의 무명 시인 두보는 낙양에서 만나 짧은 여행을 함께했다. 자유분방한 이백에게 두보는 깊은 감명을 받았고, 평생 이백을 그리워하는 시를 썼다. (반면 이백이 두보에게 쓴 시는 상대적으로 적다.)
중당의 시인들
中唐 (766~835) — 변화와 사회 비판
전란 후 국운은 기울었고 사회 모순은 심해졌다. 시인들은 성당의 웅장함을 흉내 내기보다, 아주 쉬운 언어로 사회를 고발하거나 반대로 아주 기이한 표현을 쓰는 쪽으로 갈라졌다.
"글을 모르는 노파도 이해할 수 있게 썼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쉬운 시를 추구했다. 신악부 운동을 통해 부패한 정치를 비판했다.
대표작
《長恨歌》(현종과 양귀비의 사랑), 《琵琶行》
"문장은 모름지기 선진(先秦)과 양한(兩漢)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며 고문 부흥 운동을 이끌었다. 시에서도 철학적이고 산문적인 기풍을 도입했다.
이하 — 시귀(詩鬼)
27세에 요절한 천재. 귀신, 죽음, 환상 등 기괴하고 탐미적인 시어들을 구사했다.
元稹과 白居易: '원백'이라 불리며 평생의 지기였다. 서로 좌천되어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주고받은 시들은 애절한 우정의 대명사이다.
정치적 개혁을 꿈꾸다 함께 좌천되었지만, 문학적으로 서로를 격려하며 고문 운동을 완성한 동지이다.
만당의 시인들
晩唐 (836~907) — 황혼의 미학
당나라의 몰락이 가속화되던 시기이다. 시인들은 거창한 구국(救國)의 이념보다는 개인의 내면, 과거에 대한 회상, 퇴폐적이고 감상적인 미학에 빠져들었다.
만당 최고의 시인. 당쟁(우이당쟁)의 틈바구니에서 불우한 관직 생활을 했다. 그의 시는 화려하지만 난해하고, 몽환적인 사랑을 다룬 '무제(無題)' 시가 유명하다.
대표작
《錦瑟》, 《夜雨寄北》
호방하고 풍류를 즐겼던 시인으로, 역사적 사건을 재해석하는 영사(詠史)시에 능했다.
대표작
《江南春》, 《山行》
성당 시대의 큰 별 '이백과 두보(李杜)'에 비견하여, 만당의 이상은(李)과 두목(杜)을 합쳐 '소이두'라 부른다. 전성기의 기백은 사라졌지만, 섬세하고 감각적인 시풍으로 당나라 시의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후대에 미친 영향
後代影響 — 후대에 미친 영향과 평가
송나라 이후의 평가
후대 사람들은 당나라 시(唐詩)를 '情(정, 감정)'이 위주가 된 시, 송나라 시(宋詩)를 '理(이, 이치)'가 위주가 된 시로 구분하며, 서정시의 정점은 역시 당나라라고 평가했다.
동아시아에 미친 영향
한국
신라의 崔致遠(최치원)부터 고려, 조선의 선비들에 이르기까지, 시를 짓는다는 것은 곧 당나라 시를 배운다는 것을 의미했다. 특히 두보의 시는 언해(한글 번역)되어 교과서처럼 쓰였다.
일본
헤이안 시대부터 당나라 시는 귀족들의 필수 교양이었으며, 백거이의 시는 일본 문학(겐지모노가타리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천 년이 지난 오늘날 현대인의 마음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