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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공부
한시 해설 · 3장 · 2026-10-21 갱신

운과 평측

사성과 평측의 개념, 압운과 운서의 역사적 계보를 살피고, 중고음과 현대 중국어·한국 한자음의 차이가 생긴 음운사적 배경을 설명한다.

네 성조와 평측: 소리의 대비가 태어난 까닭

사성(四聲)의 발견과 평측(平仄)의 이분법

한시가 악기 반주 없이 글자만으로도 음악적 긴장과 율동을 만들어 내는 바탕에는 옛 한자음이 지녔던 고유의 성조 체계인 사성(四聲)과, 구절 끝의 울림을 맞추는 압운(押韻)이 자리 잡고 있다 [S05, S07, S11]. 전통 음운학에서 사성이란 한자 한 음절이 발음될 때 지니는 소리의 높낮이·길이·끝소리의 성질에 따라 나눈 네 가지 범주, 곧 평성(平聲)·상성(上聲)·거성(去聲)·입성(入聲)을 가리킨다 [S05, S11].

전통적인 성조 묘사에 따르면, 평성(平聲)은 소리가 높낮이의 급격한 굴곡 없이 평탄하고 길게 이어지는 소리다 [S05, S52]. 이에 비해 상성(上聲)은 뒤끝이 위로 치켜 올라가는 소리이고, 거성(去聲)은 높은 곳에서 아래로 떨어지며 멀어지는 소리이며, 입성(入聲)은 음절 끝이 폐쇄음 받침으로 짧고 촉급하게 닫히는 소리다 [S05, S35, S52].

시를 지을 때 이 네 가지 성조를 매 글자마다 각각 구별하여 배열하기는 지나치게 번거로울 뿐 아니라, 실제 낭송에서 귀에 또렷하게 감지되는 가장 큰 차이는 ‘길고 평탄하게 뻗는 소리’와 ‘굴곡이 있거나 짧게 끊어지는 소리’의 대비다 [S11, S52]. 여기서 시학(詩學) 특유의 이분법인 평측(平仄)이 태어났다 [S05, S11]. 사성 가운데 평탄한 평성 하나를 ‘평(平)’으로 두고, 기울어지거나 급하게 닫히는 상성·거성·입성 세 가지를 묶어 ‘측(仄, 기울 측)’으로 맞세운 것이다 [S05, S11, S52].

사성(四聲) 범주평측(平仄) 구분전통적 소리의 성질역사적 음운 특징
평성(平聲)평(平)낮거나 고른 높이로 길고 평탄하게 이어지는 소리모음이나 비음(-m, -n, -ng)으로 끝나며 울림이 길게 유지됨
상성(上聲)측(仄)평성보다 짧고 끝이 위로 올라가는 소리성조의 상승 굴곡이 뚜렷하여 평탄한 소리와 대비됨
거성(去聲)측(仄)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며 분명하게 멀어지는 소리하강 굴곡을 지니며 의미 분화(파음자)에서도 자주 나타남
입성(入聲)측(仄)숨이 막히듯 짧고 촉급하게 닫히는 소리역사적으로 -p, -t, -k 계열의 무성 폐쇄 종성을 동반함

결국 한시 구절에서 평측을 맞춘다는 말은, 한 줄 안에서 길고 고른 소리(平)와 굴곡지고 짧은 소리(仄)를 규칙적으로 교차시켜 소리의 파동을 설계한다는 뜻이다 [S11, S14, S52].

왜 그런 소리 질서가 생겼는가: 육조 시론의 자각

그렇다면 옛 시인들은 왜 이처럼 까다로워 보이는 소리의 질서를 시에 도입했을까. 이는 시인을 속박하기 위해 외부에서 임의로 부과한 규제가 아니라, 한문 시구를 소리 내어 읽을 때 같은 성조나 비슷한 소리가 연달아 겹치면서 생기는 단조로움과 둔탁함을 피하려는 음성학적·미학적 자각에서 비롯되었다 [S08, S11, S52].

이러한 자각을 문학이론으로 처음 선명하게 정식화한 문헌이 남조(南朝) 양(梁)나라의 학자이자 시인인 심약(沈約)이 편찬한 『송서(宋書)』 권67 「사령운전론(謝靈運傳論)」이다 [S11]. 심약은 오색(五色)이 서로 어우러져야 아름다운 무늬를 이루듯, 시의 소리 역시 높고 낮음, 가볍고 무거움이 서로 번갈아 나타나야 한다고 보았다 [S11].

欲使宮羽相變,低昂舛節;若前有浮聲,則後須切響。 — 沈約, 『宋書』 「謝靈運傳論」 [S11]

“오음의 궁음(宮音)과 우음(羽音)이 서로 바뀌고 낮은 소리와 높은 소리가 마디를 달리하게 하려는 것이니, 만약 앞자리에 가볍게 떠오르는 소리가 놓였다면 뒷자리에는 반드시 절실하게 끊어 울리는 소리가 따라야 한다.” [S11] 심약은 이어지는 대목에서 한 줄과 두 줄 안의 소리 변화를 더욱 압축하여 설명했다 [S11].

一簡之內,音韻盡殊;兩句之中,輕重悉異。 — 沈約, 『宋書』 「謝靈運傳論」 [S11]

“한 죽간(한 구절) 안에서도 소리와 운이 모두 달라야 하고, 나란히 놓인 두 구절 사이에서도 가볍고 무거운 소리가 다 달라야 한다.” [S11] 앞에 평탄하게 흐르는 소리(浮聲)가 오면 뒤에 굴곡지고 촉급한 소리(切響)를 배치하고, 앞 구절의 소리 배열과 뒷구절의 소리 배열을 반대로 맞물리게 해야 읽는 이의 귀에 생동감 있는 리듬이 전달된다는 원리다 [S11, S52].

물론 문학사에서 흔히 말하는 ‘사성팔병(四聲八病, 네 성조의 구별과 시에서 피해야 할 여덟 가지 소리상의 결함)’이나 남조 제나라 영명 연간의 영명체(永明體)를 심약 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독창적으로 발명한 것으로 보거나, 영명체의 규칙이 당나라 때 완성된 율시(律詩)의 평측 법칙과 완전히 똑같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S08, S11]. 현대 시률(詩律) 연구들은 한어 고유의 성조 대립이 이미 이전 시가에서도 자연스럽게 작용하고 있었으며, 심약 등의 이론적 자각과 초당 시인들의 실작 정련을 거치면서 점진적으로 당대 근체시의 정형에 도달했음을 밝혀내고 있다 [S06, S08, S11].

여기서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사실은, 같은 한자라도 문맥 속의 의미와 품사에 따라 독음과 성조가 달라지는 ‘다음자(多音字, 파음자)’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S44, S52]. 예컨대 ‘볼 간(看)’이나 ‘바랄 망(望)’, ‘길 장(長)/어른 장(長)’, ‘빌 공(空)/비울 공(空)’ 같은 글자는 어떤 뜻으로 쓰였는가에 따라 평성이 되기도 하고 측성(상성·거성)이 되기도 한다 [S44, S52]. 또한 남송의 비평가 엄우(嚴羽)가 『창랑시화(滄浪詩話)』에서 지적했듯, 소리의 법칙은 시를 지탱하는 골격이지만 시의 궁극적 성패는 그 소리 질서 위에 어떤 정취(別趣)와 시상을 실어 나르는가에 달려 있다 [S14].

詩有別材,非關書也;詩有別趣,非關理也。 — 嚴羽, 『滄浪詩話』 卷一 「詩辯」 [S14]

구절 안에서 짝수 자리를 교차시키는 ‘2·4·6 평측 부동’과 연을 잇는 ‘점대(粘對)’, 피해야 할 금기인 ‘고평(孤平)·하삼평(下三平)’, 그리고 정격을 의도적으로 꺾어 균형을 되살리는 ‘요체(拗體)와 구요(救拗)’ 등 실제 평측 조율의 세부 규칙은 작법 편의 평측과 조율 및 용어 사전에서 상세히 다룬다.


운과 압운, 그리고 운서의 역사

구절 끝이 서로 부르는 소리: 운(韻)과 압운(押韻)

평측이 한 구절 내부와 인접한 구절 사이의 높낮이를 조율하는 가로축이라면, 압운(押韻)은 시 전체의 구절 끝을 하나의 소리 줄기로 꿰어 묶는 세로축이다 [S07, S52]. 한자 한 음절의 소리는 첫소리인 성모(聲母, 초성)와 가운뎃소리·끝소리를 아우르는 운모(韻母, 중성과 종성), 그리고 성조(聲調)의 세 요소로 이루어진다 [S43, S44, S52]. 이때 첫소리(성모)가 다르더라도 운모의 중심 모음과 끝받침(운미·韻尾), 성조가 같거나 같은 범주로 묶이는 글자들은 서로 어울리는 울림을 내는데, 이 소리 관계를 ‘운(韻)’이라 부르고 정해진 구절의 맨 끝자리에 같은 운 계열의 글자(운자·韻字)를 반복해 놓는 일을 ‘압운(押韻, 운을 밟음)’이라 한다 [S07, S44, S52].

구절 끝에 비슷한 울림의 글자를 놓아 리듬의 매듭을 짓는 관습은 운서가 편찬되기 훨씬 전인 고대 시가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존재했다 [S46]. 『시경』의 첫 편인 「주남·관저(周南·關雎)」를 보면, 첫째 장의 구절 끝 글자들이 서로 소리로 호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S46].

關關雎鳩,在河之洲。窈窕淑女,君子好逑。 — 『詩經』 「周南·關雎」 [S46]

제1구 끝의 ‘구(鳩)’, 제2구 끝의 ‘주(洲)’, 제4구 끝의 ‘구(逑)’는 모두 상고음(上古音)과 중고음에서 같은 운 계열에 속하는 글자들로, 제1·2·4구의 끝을 같은 계열의 모음 울림으로 닫아 네 줄을 하나의 음악적 단락으로 묶어 준다 [S46].

이러한 압운의 운용 방식은 고체시와 근체시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S04, S07]. 고체시(고시와 악부)는 평성뿐 아니라 상성·거성·입성 등 측성으로 압운하는 경우가 흔하며, 한 편 안에서도 시상의 단락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운으로 갈아타는 환운(換韻)을 자유롭게 구사한다 [S04, S07]. 예를 들어 이백(李白)의 오언고시 「월하독작(月下獨酌)」은 도입부 네 구에서 ‘친(親)’과 ‘인(人)’으로 평성 압운을 시작한 뒤, 이어지는 구절들에서 측성운으로 운을 바꾸며 감정의 고조를 표현한다 [S111].

花間一壺酒,獨酌無相親。舉杯邀明月,對影成三人。 — 李白, 「月下獨酌」 [S111]

마찬가지로 건안 시단 조조(曹操)의 사언 악부 「단가행(短歌行)」이나 중당 백거이(白居易)의 신악부 「매탄옹(賣炭翁)」은 이야기의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압운 계열을 바꾸어 서사의 생동감을 살리고, 왕유(王維)의 오언고시 「송별(送別)」은 ‘지(之)·수(陲)·시(時)’로 한 운을 유지하면서도 평측 배열에서는 고시의 자유로움을 간직한다 [S04, S07].

이에 비해 근체시(절구·율시·배율)의 압운은 훨씬 엄격하고 정제된 질서를 따른다 [S07, S52, S53].

  1. 평성 압운의 원칙: 근체시는 예외적인 경우를 빼면 울림이 길고 고른 평성(平聲) 운목에서 글자를 골라 압운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S07, S52].
  2. 짝수 구미 압운과 수구압운: 연을 매듭짓는 짝수 구의 끝(절구의 제2·4구, 율시의 제2·4·6·8구)에는 반드시 압운자를 놓는다. 시의 첫 구(제1구) 끝에도 같은 운목의 글자를 놓는 방식은 ‘수구압운(首句押韻, 첫 구 압운)’이라 하여 칠언시에서 기본처럼 쓰이고, 첫 구에 압운하지 않는 방식은 오언시에서 자주 쓰인다 [S07, S52, S53].
  3. 비압운 구미의 측성 마감: 압운하지 않는 홀수 구(수구불압운일 때의 제1구 및 제3·5·7구)의 끝에는 반드시 측성 글자를 놓아, 홀수 구 끝의 막히는 소리(仄)와 짝수 구 끝의 열리는 소리(平, 압운)가 끝없이 대화하게 만든다 [S52, S53].
  4. 일운도저(一韻到底): 근체시는 중간에 운을 바꾸지 않고 처음 고른 하나의 운목으로 시의 끝까지 관통한다 [S52].

실제 작품에서 압운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자. 왕유의 오언절구 「녹채(鹿柴)」는 첫 구에 압운하지 않고 제2구 끝 ‘향(響)’과 제4구 끝 ‘상(上)’으로 상성(측성) 압운을 한 고절(古絶) 사례이며 [S110], 두보(杜甫)의 오언율시 「춘망(春望)」은 제1구 끝을 측성 ‘재(在)’로 열어 둔 뒤 제2·4·6·8구 끝에 ‘심(深)·심(心)·금(金)·잠(簪)’이라는 하평성 침운(侵韻) 글자들을 일관되게 배치했다 [S113]. 또한 두보의 칠언율시 「등고(登高)」는 제1구 끝 ‘애(哀)’부터 수구압운을 시작하여 제2구 ‘회(回)’, 제4구 ‘래(來)’, 제6구 ‘대(臺)’, 제8구 ‘배(杯)’까지 상평성 회운(灰韻) 하나로 쉰여섯 자 전체를 긴밀하게 결속한다 [S112].

無邊落木蕭蕭下,不盡長江滾滾來。 — 杜甫, 「登高」 [S112]

출구인 제3구 끝은 측성 글자 ‘하(下)’로 떨어뜨리고, 대구인 제4구 끝은 평성 압운자 ‘래(來)’로 길게 받아 올림으로써 나뭇잎이 지는 하강감과 강물이 밀려오는 지속감을 소리 자체로 구현한 것이다 [S52, S112]. 만당 두목(杜牧)의 칠언절구 「적벽(赤壁)」 역시 제1구 ‘소(銷)’, 제2구 ‘조(朝)’, 제4구 ‘교(喬)’의 하평성 소운(蕭韻)으로 압운하면서 제3구 끝만 측성 ‘변(便)’으로 꺾어 시상의 반전을 뒷받침한다.

『절운』·『광운』에서 『평수운』까지: 운서의 계보와 반절

넓은 영토와 긴 세월에 걸쳐 시를 짓다 보면 지역마다, 또 시대마다 한자의 실제 발음이 조금씩 달라지기 마련이다 [S43, S44]. 시인들이 방언 차이를 넘어 어떤 글자들이 같은 운(韻)에 속하고 무슨 성조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편찬한 사전이 바로 운서(韻書)다 [S43, S44].

운서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점이 된 책은 수(隋)나라 인수(仁壽) 원년(601)에 육법언(陸法言)이 안지추(顏之推)·소해(蕭該) 등 남북의 학자들과 논의하여 편찬한 『절운(切韻)』이다 [S43, S44]. 『절운』은 당대에 이르러 시인들의 필독서이자 과거 시험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는데, 당 현종 때 손면(孫愐)이 『절운』을 증보하며 쓴 「당운서(唐韻序)」는 그 위상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S16].

惟陸生《切韻》,盛行於世。 — 孫愐, 「唐韻序」 [S16]

“오직 육법언 선생의 『절운』만이 세상에 널리 성행하였다.” [S16] 『절운』의 원전은 오늘날 완본으로 남지 않고 돈황(敦煌) 등지에서 발견된 잔권으로 전하지만, 당·송대를 거치며 이를 증보·정리한 송대 진팽년(陳彭年) 등의 『광운(廣韻)』이 온전히 남아 『절운』 계열의 음운 체계를 보여 준다 [S16, S43, S44].

『절운』을 증보한 『광운』은 사성에 따라 한자의 운을 총 206개의 운목(韻目, 상평 28·하평 29·상성 55·거성 60·입성 34)으로 세밀하게 나누었다 [S43, S44]. 그리고 각 글자의 발음은 오늘날의 발음기호 대신 두 글자를 결합해 소리를 알려 주는 ‘반절(反切)’ 방식으로 표기했다 [S43, S44]. 반절이란 앞 글자(반절상자)에서 초성(성모)을 취하고 뒷글자(반절하자)에서 운모와 성조를 취해 합치는 표기법이다 [S43, S44]. 예를 들어 『광운』 상평성 첫머리인 「일동(一東)」 운목의 대표 글자 ‘동(東)’ 항목을 보면 다음과 같이 수록되어 있다 [S44].

東,徳紅切。 — 『廣韻』 「上平聲·一東」 [S44]

‘동(東)’의 소리는 ‘덕(徳, 德의 이체자, d-)’의 첫소리와 ‘홍(紅, -ung, 평성)’의 가운뎃소리·끝소리·성조를 합친 소리라는 뜻이다 [S44].

그러나 『광운』의 206운은 음운 구분이 워낙 세밀하여, 실제 시를 지을 때는 소리가 가까운 인접 운목들을 함께 섞어 쓰는 ‘동용(同用)’이 일찍부터 허용되었다 [S44, S52]. 그 뒤 13세기 금(金)나라의 왕문욱(王文郁)과 남송(南宋)의 유연(劉淵) 등이 이미 동용되던 운목들을 하나로 합쳐 106운(또는 107운)으로 정리한 운서를 펴냈는데, 이것이 원·명·청대와 고려·조선을 거쳐 오늘날까지 근체시 작법의 표준으로 쓰이는 『평수운(平水韻)』이다 [S52, S53, FC06]. 『평수운』은 상평성 15운, 하평성 15운(합쳐서 평성 30운), 상성 29운, 거성 30운, 입성 17운의 총 106운으로 구성된다 [S52]. 따라서 송대 운서인 『광운』의 206운 체계와 후대 작시 표준인 『평수운』의 106운 체계는 역사적 단계가 다른 별개의 수 체계로 구별해야 한다 [S44, S52]. 『평수운』의 구조와 실제 운자를 검색하는 방법은 작법 편의 운서와 평수운에서 자세히 안내한다.


중고음과 현대 발음: 왜 지금 발음만으로 옛 시를 재단할 수 없는가

역사 음운 층위로서의 중고음(中古音)

오늘날 한시를 처음 공부하는 독자가 가장 흔히 겪는 당혹감은, 당·송의 명작들을 현대 한국어 한자음이나 현대 중국어 보통화(普通話)로 읽었을 때 압운 글자들의 소리가 서로 다르게 들리거나 평측이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는 점이다 [S34, S52, S53]. 왜 이런 어긋남이 생기는지를 이해하려면 한시 격률의 바탕이 된 ‘중고음(中古音)’의 성격과 그 이후의 음운 변화를 살펴보아야 한다 [S43, S44].

언어학에서 말하는 중국어 중고음(Middle Chinese)은 위진남북조 후기부터 수·당·송 초에 이르는 시기의 한자음 체계를 가리킨다 [S43, S44]. 다만 중고음은 당시 어느 한 도시의 구어를 녹음기처럼 그대로 받아 적은 단일 음성이 아니다 [S43, S44]. 『절운』과 『광운』의 운목 분류, 반절 표기, 당·송 시인들의 실제 압운 용례, 그리고 한국·일본·베트남의 한자음 및 중국 각지 방언 자료를 교차 비교하여 재구(再構)해 내는 역사음운학적 체계다 [S34, S35, S43, S44].

이 중고음 체계 위에서 정립된 근체시의 운목과 성조 구분은 이후 천 년 넘게 문인 사회의 문어 규범(평수운 체계)으로 고정된 반면, 실제 사람들이 입으로 말하는 중국어 구어와 한국 한자음은 세월을 거치며 각기 큰 폭의 음운 변화를 겪었다 [S05, S34, S35, S52]. 그 결과 옛 운서에서는 한 집안이었던 글자들이 오늘날의 발음에서는 서로 다른 모음이나 성조로 갈라지기도 하고, 반대로 옛날에는 엄격히 구별되던 소리가 오늘날에는 똑같은 발음으로 합쳐지기도 한 것이다 [S34, S35, S52].

현대 중국어 보통화와 방언, 그리고 입성(入聲)의 갈림

먼저 중국어 내부의 변화를 보자. 오늘날 중화권의 표준어인 보통화(普通話)에도 제1성(음평·陰平)·제2성(양평·陽平)·제3성(상성·上聲)·제4성(거성·去聲)의 네 가지 성조가 있다 [S05, S34]. 이 때문에 중고음의 사성(평·상·거·입)이 현대 보통화의 1·2·3·4성과 일대일로 대응한다고 오해하기 쉬우나, 실제 역사적 대응 관계는 훨씬 복잡하다 [S05, S34].

가장 결정적인 변화는 입성(入聲)의 소멸과 분산이다 [S05, S34]. 중고음에서 입성은 음절 끝에 -p, -t, -k라는 무성 폐쇄음 받침을 지녀 숨이 급격히 막히며 끝나는 독특한 성조 범주였다 [S05, S35]. 그러나 원(元)·명(明)대를 거치며 북방 관화(官話) 계열에서는 음절 끝의 -p, -t, -k 받침이 모두 떨어져 나갔고, 갈 곳을 잃은 입성 글자들은 현대 보통화의 제1성·제2성·제3성·제4성 네 성조 속으로 뿔뿔이 흩어져 편입되었다(이를 음운사에서 ‘입파삼성·入派三聲’ 또는 ‘입파사성’이라 부른다) [S05, S34].

그 결과 옛 시에서는 분명히 측성(입성)이어야 할 글자가 현대 보통화에서는 제1성이나 제2성(평성 계열)으로 읽히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S05, S34, S53]. 예컨대 ‘백(白, 흰 백)’, ‘독(獨, 홀로 독)’, ‘국(國, 나라 국)’, ‘죽(竹, 대 죽)’, ‘적(笛, 피리 적)’ 같은 글자들은 중고음과 『평수운』에서 모두 입성(측성)이지만, 현대 보통화에서는 제2성(양평)으로 발음된다 [S34, S52]. 만약 현대 보통화의 1·2성을 그대로 한시의 평성으로 간주하면, 당·송 시인들이 측성 자리에 쓴 수많은 입성 글자를 평성으로 오판하게 된다 [S34, S53].

다만 입성이 사라진 현상을 모든 중국어에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S34]. 북방 관화에 바탕을 둔 표준 보통화에서는 입성 범주가 사라졌지만, 광둥어(월어·粵語), 민남어(閩南語), 객가어(客家語) 등 남방 방언들에는 오늘날까지도 -p, -t, -k 계열의 폐쇄음 받침이 비교적 뚜렷하게 보존되어 있으며, 오어(吳語, 상하이어 등)나 북방의 진어(晉語, 산시성 장치 방언 등)에도 성문 폐쇄음(-ʔ) 형태로 입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S34]. 방언마다 입성을 보존한 정도와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 옛 입성의 실체는 살아 있는 방언 자료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S34].

한국 한자음의 ‘ㄱ·ㄹ·ㅂ’ 받침과 중세 한국어 성조의 흔적

그렇다면 한국어 한자음은 중고음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한국어에서도 15세기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 당시의 중세 국어 문헌을 보면 글자 왼쪽에 점을 찍는 방점(傍點)을 통해 평성(점 없음, 낮은 소리)·거성(점 하나, 높은 소리)·상성(점 둘, 낮았다가 높아지는 소리)의 성조 높낮이를 구별했고, 한자음 표기에도 이러한 성조 구별이 반영되어 있었다 [S05]. 그러나 이 성조(방점) 체계는 16세기 후반을 거치며 한국어 중앙어에서 급격히 약화되어 소멸했고, 현대 한국어 표준어에서는 평성·상성·거성의 높낮이 차이가 더 이상 변별적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S05]. 따라서 오늘날 한국어 독음만으로는 어떤 글자가 평성이고 어떤 글자가 상성·거성인지를 귀로 가려낼 수 없으며 반드시 운서나 자전을 확인해야 한다 [S52].

반면 현대 중국어 보통화가 완전히 잃어버린 중고음의 입성(入聲) 받침 체계는 오히려 한국 한자음의 종성(받침) 속에 선명한 대응 흔적을 남겼다 [S05, S34, S35]. 중고음의 세 가지 입성 운미인 -p, -t, -k 계열이 한국 한자음에서는 각각 다음과 같은 받침으로 규칙적인 대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S34, S35, S52].

  • 중고음 -p 계열 입성 → 한국 한자음 ‘ㅂ’ 받침: 葉(엽), 法(법), 合(합), 入(입), 答(답), 蝶(접) 등 [S35, S52].
  • 중고음 -t 계열 입성 → 한국 한자음 ‘ㄹ’ 받침: 月(월), 別(별), 一(일), 發(발), 節(절), 雪(설) 등 [S35, S52].
  • 중고음 -k 계열 입성 → 한국 한자음 ‘ㄱ’ 받침: 國(국), 白(백), 獨(독), 落(락), 木(목), 客(객) 등 [S34, S35, S52].

여기서 흥미로운 음운사적 사실은 중고음의 무성 치경 폐쇄음 -t 받침이 한국 한자음에서는 ‘ㄷ’이 아니라 모두 ‘ㄹ’ 받침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S35]. 국어사 및 한자음 연구에서는 고대 한국어로 한자음이 수용·정착되는 과정에서 음절 끝의 -t 소리가 설측음(또는 탄설음)인 ‘ㄹ’로 변한 역사적 음운 변화의 결과로 이를 설명한다 [S35]. 비록 끝소리가 -t에서 ‘ㄹ’로 바뀌면서 원래의 막히는 파열음 성질은 부드러워졌지만, 한국 한자음 안에서 평성·상성·거성 계열의 비음 받침(‘ㄴ·ㅁ·ㅇ’, 예: 山 -n, 心 -m, 東 -ng)과 섞이지 않고 별도의 받침 부류로 온전히 구분되어 남았다 [S35, S52].

이 역사적 대응 덕분에 한국 독자는 한시를 읽거나 지을 때 매우 실용적인 판별 기준을 하나 얻게 된다. 우리 한자음에서 받침이 ‘ㄱ·ㄹ·ㅂ’으로 끝나면 역사적인 입성을 가려내는 유용한 단서가 된다는 점이다. 다만 최종 평측(平仄)은 문맥에 맞는 독음과 운서의 분류를 함께 확인해야 한다(반대로 받침이 없거나 ‘ㄴ·ㅁ·ㅇ’ 받침인 글자는 평성·상성·거성 가운데 하나이므로 운서로 확인해야 한다) [S52].

다만 한국 한자음의 ‘ㄱ·ㄹ·ㅂ’ 받침 대응을 중고음과의 완전무결한 일대일 등식처럼 오해해서는 안 된다 [S34, S35]. 한국 한자음 역시 천 년 넘는 세월 동안 모음의 합류와 두음법칙, 성조의 소멸 등 독자적인 음운 변화를 겪었기 때문에, 같은 『평수운』 운목에 속하는 글자라도 현대 한국어 모음 독음은 다르게 읽힌다 [S35, S52]. 예컨대 상평성 첫 운목인 ‘일동(一東)’에 속하는 東(동)·同(동)·空(공)·風(풍)·中(중)·紅(홍)은 한국어 모음이 ‘오’와 ‘우’로 갈리고, 두보의 「등고」에서 같은 회운(灰韻)으로 압운한 哀(애)·回(회)·來(래)·臺(대)·杯(배)는 한국어 독음이 ‘애’와 ‘외’로 갈린다 [S52, S112]. 그러므로 한시의 운과 평측을 이해한다는 것은 현대의 한국어 독음이나 현대 보통화 발음 중 어느 하나에 갇히지 않고, 옛 시인들이 공유했던 역사적 소리 질서(중고음과 평수운 체계)의 원리를 이해하는 일이다 [S43, S52, S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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